힌디어를 국어로 지정하려는 나렌드라 모디 정부의 정책을 두고 인도의 내분이 깊어지고 있다. 다민족, 다언어 국가인 인도에서 힌디어를 국어로 정하겠다는 건 "힌디어를 제1언어, 힌두족을 제1민족으로 우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정부의 언어 강요가 심해질수록 반발도 강해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최근 모디 총리와 여당 인도인민당(BJP)이 '힌디어 국어 지정'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른 언어 사용자들에게 비판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10월 주요 대학 등 교육기관에 "영어 대신 힌디어로 수업을 하고 시험을 볼 것"을 권고했다. 앞서 4월 모든 교육기관의 힌디어 수업과 힌디어 공문서 작성 의무화를 추진하다 무산된 후였다.
인도에선 무려 70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된다. 힌디어를 쓰는 인구가 가장 많긴 하지만, 그것도 전체의 약 27%라 단일 국어 지정 자체가 어렵다. 언어 다양성과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인도 정부는 그간 '국어' 대신 공무 기능을 강조하는 '공용어'를 선정해서 이용해왔다. 영어와 힌디어는 연방 차원의 공용어로, 다른 22개 언어는 지역 공용어로 정했다.
그런데 2014년 BJP는 총선에서 압승하자 영어를 공용어에서 빼고 힌디어를 유일 국어로 만들려는 시도를 본격화했다. "영어 사용은 노예적 사고방식을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힌두 민족주의적 성격이 깊다. 모디 총리는 집권 후 무슬림이 다수인 잠무 카슈미르주의 특별자치주 지위를 박탈하고, 무슬림과 세속 자유주의 정당을 "내부의 적"으로 지칭하며 힌두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힌디어를 거의 쓰지 않는 남부와 동부 지역 주민들은 "힌디 패권주의"라며 반발하고 있다. 북부에서 주로 쓰는 힌디어는 인도유럽 어족이고, 남부·동부에서 쓰는 타밀어와 벵골어는 드라비다 어족이라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학교 수업을 힌디어로만 하면 남부·동부 출신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인도학생연맹(SFI)과 인도민주청년연맹(DYFI) 회원 수백 명은 타밀나두 마두라이, 웨스트벵골 콜카타 등에 모여 "특정 언어를 강요하지 말라"고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엔 타밀나두 살렘 지역에 사는 85세 남성이 "왜 타밀어 대신 힌디어를 선택해야 하느냐"며 분신한 끝에 숨졌다. M.K. 스탈린 타밀나두주 총리는 "BJP는 힌디어를 강요하고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를 만들어 다른 언어들을 파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국어 지정을 둘러싼 갈등이 지금보다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은 정부가 특정 언어 사용을 강요하다 내전으로 번진 경험이 있다. 스리랑카는 '싱할라족 단일공식언어법안'으로 타밀족을 차별하다 1983년부터 26년간 내전을 치렀다. 파키스탄은 우르두어를 유일 공용어로 선포하고 동파키스탄인들의 언어인 벵골어를 차별하다 1971년 내전 끝에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이 분리 독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네쉬 나라얀 데비 인도 언어학자는 "힌디어를 강요하려는 정부 시도는 위험하다"며 "인도가 모든 토착 언어를 수용할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인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