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 노동조합과 연합단체에 재정 투명성에 대한 자율점검을 실시한 뒤 이를 관할 행정관청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거나 허위보고할 경우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아울러 법령을 개정해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선출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회계감사 결과의 공표를 추진한다. 노동계는 이런 정부의 방침을 '노조 때리기'로 규정하고 자율점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충돌이 예상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완수를 위해 낡고 경직된 제도 개선과 함께 노사관계의 불합리한 관행 개선을 추진하겠다"면서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이 장관은 "(현재) 노조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공개되는지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져 '깜깜이 회계'라는 말까지 나온다"면서 "노조도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조합원, 청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을 강화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일단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노조의 재정 상황 점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노조법 14조에 따라 노조가 △조합원 명부 △규약 △재정 관련 장부와 서류 등 비치·보존돼야 할 서류가 있는지 여부를 자율점검기간(12월 29일~내년 1월 31일) 동안 자체적으로 살피도록 했다. 이 기간이 끝나면 관할 행정관청에 10일 내에 결과 보고서를 보내야 한다. 이때 결과서를 보내지 않거나, 일부 서류가 누락된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고용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 노동조합과 연맹·총연맹 등 253개소에 대해 자율점검을 실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점검 대상은 단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고용부는 법령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노조법은 대표자가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를 실시하게 돼 있지만, 회계감사원의 자격이나 선출 절차 등은 명시돼 있지 않아 전문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장관은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선출 방법을 구체화하고, 재정 상황의 공표 방법과 시기를 명시하겠다"면서 "또 일정 규모 이상 노조의 회계감사 결과 공표를 검토하고, 조합원의 열람권을 보장·확대하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이번 조치가 노조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며,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노조가 자치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그간 정부는 재정을 살필 수 있는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조합원이 재정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워 횡령 등 범죄로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최근 노조에서 발생한 폭행·폭력·횡령·배임 등 불법·부당 행위 사례를 언급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조합원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노조의 자주권을 침해해 노동탄압을 시도한다고 반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이 장관은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나라도 행정관청에 재정 관련 보고를 하게 돼 있다"면서 "국제노동기구(ILO)도 (정부의) 자의적 개입에는 반대하지만 정기적으로 법령에 의해 보고하는 절차는 존중하고, 이는 (노조에 대한) 자주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이미 현행법에 따라 재정을 관리하고 있는데, 정부가 노조를 때리기 위해 일부 사례를 부각시켜 모든 노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한 노조에 큰 부정이 있고 비민주적인 회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양산해 결과적으로 노조와 조합원, 노조와 시민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율점검의 실효성이 확보될지도 미지수다. 양대 노총은 과태료를 물더라도 행정관청에 보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노조를 범죄자 취급하는 정부에 협조할 마음이 없다"면서 "진정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노조와 대화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