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 보유한 주택 2,700가구를 미끼로 266억 원 규모의 전세 사기를 저지른 건축업자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수도권에 빌라와 오피스텔 1,139가구를 매입해 전세 사기 행각을 벌이다 숨진 일명 ‘빌라왕’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규모다.
23일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건축업자 A(61)씨와 공범 4명, 이들의 범행을 도운 공인중개사와 바지 임대업자, 중개 보조인 등 46명을 사기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건축업자인 A씨 등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327가구의 전세 보증금 266억 원을 세입자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일당의 전세 사기로 피해자들은 1인당 최소 6,000만 원부터 최대 1억 원가량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A씨는 10년 전부터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를 새로 지은 뒤 전세 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갔다. 이런 식으로 인천과 경기 일대에 보유한 주택만 2,700채. 지난해부터 자금난에 빠진 이들은 주택담보 대출 이자와 각종 세금이 연체돼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계약만료 시점에 맞춰 보증금을 수천만 원씩 올려 계약을 유지했다.
공범 중에는 A씨에게 매달 200만 원을 받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입자들에게 전세를 준 바지 임대업자도 있었다. 또 이번에 붙잡힌 공인중개사나 중개 보조인들은 전세 사기 정황이 뚜렷한 상황에서 “집주인이 돈이 많아 걱정 안 해도 된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7월부터 미추홀구 일대에서 전세 사기로 인한 고소가 잇따르자 전담팀을 꾸리고 수사에 착수해 A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A씨 일당과 관련한 추가 고소 사건을 계속 조사하는 등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경찰이 A씨와 공범 4명에 대해 신청한 사전 구속영장은 이날 오후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피의자들이) 심문에 임한 태도와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볼 때 현재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