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시장의 지각변동 속 아이돌 그룹들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데뷔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빚으로 짊어지게 되는 초기투자금을 청산하고 나서야 맞이할 수 있기에 '꿈의 목표'로 불리던 첫 정산의 시기가 눈에 띄게 빨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반가운 소식이 모든 그룹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또 다른 그룹들은 데뷔 이후 수 년 째 첫 정산을 받지 못한 채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한층 극명해진 K팝 시장의 정산, 그 명과 암의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룹 뉴진스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데뷔 2개월 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뉴진스가 지난 7월 22일 데뷔해서 3분기(8~9월) 정산을 하게 됐다. 너무 감사하게도 음원과 음반 판매가 잘 돼서 그걸로 정산을 해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데뷔 두 달 만에 첫 정산을 받고 부모님에게 선물을 하고, 자신이 평고 가지고 싶던 물건을 사며 뿌듯함을 느꼈다는 뉴진스 멤버들의 이야기도 전파를 탔다.
과거 걸그룹들의 정산 시기를 고려할 때 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다. 과거 걸그룹 여자친구 유주는 데뷔 이후 2년여 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모모랜드 연우는 데뷔 3년 만에 출연한 방송의 출연료가 자신의 첫 수입이라는 말로 정산 시점을 언급했다. 데뷔와 동시에 큰 주목을 받으며 활동에 박차를 가했던 마마무 역시 '음오아예' 활동 이후 데뷔 약 8개월 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고 밝혔던 바다.
하지만 빠르게는 1년 내외, 길게는 2~3년의 첫 정산 시기도 수많은 걸그룹들 사이에서는 꽤나 빠른 축에 속하는 것이 사실이다. 데뷔 이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그룹의 경우 길게는 5~6년까지도 첫 정산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데뷔 이후 천천히 성장세를 기록한다고 해도 초기 투자금의 규모가 큰 경우 첫 정산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도 태반이다.
최근 불거진 이달의 소녀와 츄의 정산 관련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달의 소녀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는 중소 기획사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투자와 비용이 투입된 프로젝트인 이달의 소녀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멤버들에게 정산을 해주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츄는 데뷔 이후 6년여 간 끊임없이 활동해 왔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정산과 기약없는 기다림에 소속사에 대한 신뢰를 잃으며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달의 소녀 사태로 정산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긴 했지만, 이는 비단 이달의 소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K팝 시장이 글로벌 무대로 입지를 넓히며 각 그룹을 론칭하기 위해 투입되는 투자금 규모는 더욱 커지는 반면, 한층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며 손익분기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워진 탓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데뷔 이후 청산해야 하는 소속사의 초기 투자금에는 데뷔를 준비하며 투입된 레슨비, 숙소비, 식대부터 앨범과 뮤직비디오 제작비, 헤어·메이크업, 의상비 등 각종 부대 비용이 포함된다. 해당 투자금을 제외한 수익이 발생하는 시기가 바로 가수들이 첫 정산을 받게되는 때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 때 역시 모든 수익이 가수에게 돌아가는 구조는 아니다. 회사와 가수는 당초 계약 구조에 따라 각자 정해진 비율대로 수익금을 나눠갖는다. 과거에는 그룹 내 특정 멤버의 개인 활동 수익도 멤버 전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는 구조가 보편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많은 소속사가 개인 활동 수익은 각 멤버의 정산에만 포함시키는 구조를 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데뷔했음에도 빠르게 첫 정산을 받는데 성공한 그룹은 대부분 '3, 4세대' 걸그룹들이다. 이는 걸그룹 자체가 가진 소구력 증가에 따른 변화이기도 하다. 과거 걸그룹 팬덤의 상당수가 남성 팬들이었고, 남성 팬들의 경우 여성 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다는 한계가 있었던 탓에 걸그룹의 수익 창출이 활발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걸그룹의 팬덤 자체가 눈에 띄게 확장됨에 따라 음반, 음원, 굿즈 등의 수익이 전반적으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아이브는 데뷔 1년 만에 단일 앨범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르세라핌과 뉴진스는 데뷔 앨범 초동 30만 돌파라는 기록과 함께 출발하며 달라진 걸그룹의 판도를 입증했다. 또 글로벌 음악 시장으로의 활동 반경 확대에 따라 앨범, 음원 판매량 및 콘서트 티켓 파워 역시 급증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데뷔 이후 소위 '한 방'을 터트리지 못한 그룹들에게 이는 하늘의 별 따기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아이돌 그룹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상황까지 종종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월급제 정산 시스템을 선택하는(초기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기 전 수익의 일부를 멤버들에게 정산해주는 방식) 소속사도 있지만 어차피 멤버들이 최종 정산을 해야할 금액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큰 효과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K팝 시장이 확대되고, 두각을 드러내는 그룹도 늘어나고 있지만 첫 정산 시기를 둘러싼 명과 암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상황을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K팝 시장의 발전적 도모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