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말 아닌 말로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한 해는 개인적으로 변화가 많았다. 이렇게 한국일보에 칼럼을 쓰게 된 것이나, 라디오에 전문가로 출연하게 된 것도 변화 중의 하나이다. 가장 고무적인 변화는 연구교수가 된 일이다. 일상이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보다 안정을 갖추게 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인지, 며칠 남지 않은 2022년이 못내 아쉽다. 그렇다고 새해가 오는 것이 마냥 싫은 것도 아니다. 새롭게 펼쳐질 365일이라는, 그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새해에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과거에서 비롯될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우리는 많은 아픔을 경험했다. 그리 멀지 않은 오래전부터 곱씹어보자면, 신당역 스토킹 사망사건이 있었고, SPC 노동자의 사망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10·29 참사도 있었다.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들이 발생했다. 문제는 사건의 해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 있다. 정부의 신당역 살인사건 재발 방지 약속이 있었지만 지금도 사내 젠더 폭력은 일어나고 있으며, 노동자는 먹고살자고 나간 노동 현장에서 여전히 사망하고 있다. 10·29 참사의 국정 특위는 이제야 시작을 했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이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매우 결정적이다. 정부가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SPC 노동자 사망사건의 주요 원인은 과로였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인원 충원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노동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노동 유연화 정책은 1997년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계약직이나 파견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때는 워낙 위기의식이 팽배해 국민도 기업부터 살려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라가 IMF 위기에서 벗어나고 기업의 살림살이가 나아져도 노동의 형태는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심각한 것은 그렇게 등장한 노동의 형태가 우리 사회의 계급을 새롭게 결정지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청년들의 꿈은 대기업 정규직이 되었다. 나라가 젊은이들의 꿈을 키워주지 못할망정, 그 한계를 만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금의 팬데믹 위기는 플랫폼 노동을 가속화하였다. 노동의 유연화로 볼 수 있는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내일을 살고자 하는 것은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에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점은 그 기대와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나 다를까, 노동자들의 자살 원인 1위는 '과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도 정부는 노동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인지 아주 궁금하다. 거기에다 정부는 거대 노조를 해결해야 할 적폐로 삼았다. 이는 성장이 아닌 세를 규합하기 위한 또 다른 갈라치기로 보일 뿐이다.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일 수 없는 것인지, 북극의 한파보다 노동정책이 더 매섭게 느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