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도 1등급 못 받아" 고교내신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또 그것이 문제

입력
2022.12.23 18:00
8면
이주호 "고교 1학년도 절대평가 적용" 시사
시민단체 "1등급 없는 학교 43곳...절대평가로"
절대평가는 고교서열화·내신 인플레 우려도

'상대평가 vs 절대평가.'

고등학교 내신 평가 방식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현행 상대평가제가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고 2025년 도입될 고교학점제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주장이 진영을 불문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절대평가제로의 복귀가 고교 서열화를 강화하고 '성적 부풀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혼재된 고교학점제의 평가 방식도 논쟁을 키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A~E등급과 I(미이수)등급을 매기는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되, 1학년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공통과목은 점수 순으로 1~9등급을 부여하는 상대평가를 실시하려 했다.

보수 정부·진보 교육단체 모두 "절대평가 전환"

23일 교육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는 절대평가 도입에 군불을 때고 있는 분위기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고교학점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9등급제를 없애는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학생들이 관심사와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는 게 고교학점제 취지인데, 절대평가인 선택과목보다 상대평가인 1학년 공통과목 내신 성적만 더 신경 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행간에 녹아 있다.

진보적 교육단체들도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 부총리 발언 직후인 지난 14일 논평을 통해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은 분명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이라고 밝혔다. 시험 점수로 1~9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이 지나친 경쟁을 야기한다는 게 이유다.

학령인구 감소로 상대평가제의 한계가 노출되기도 했다. 학생 수가 적은 비수도권 학교나 비인기 과목 선택자들에게는 상대평가제가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전국 43개 고등학교가 고3 학생이 13명 미만이라 구조적으로 1등급이 나올 수 없다는 분석 결과를 전날 내놓았다. 상위 4%의 소수점을 반올림한 인원이 1명은 돼야 1등급이 가능한데, 12명의 4%는 0.48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43개 학교 중 서울·경기 소재 학교는 없다.

장지환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교사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대학이 점수만 갖고 뽑아야 했던 과거에는 상대평가가 장점이 있었지만, 이젠 학생이 적어 줄 세우지 않는 절대평가가 맞다고 본다"며 "평가자인 교사들이 전문성을 키우고 대입 역시 다각적인 평가가 이뤄지도록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절대평가제, '성적 부풀리기' 실패경험...고교 서열화 심화 우려도

절대평가제라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도입 때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경쟁 과열로 학생들의 고통이 크다는 지적에 따라 1996년 상대평가가 절대평가로 전환됐었는데, 학교들이 시험 문제를 쉽게 출제해 내신 점수를 올려주는 '성적 부풀리기'가 문제로 떠올랐다. 결국 대학은 내신 점수를 신뢰하지 않고 수능 점수를 중요하게 따졌다. 사교육 수요도 여전했다. 이에 정부는 2004년 상대평가제로 회귀했다.

정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폐지하지 않고 존치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점도 절대평가에는 불리한 변수다. 입시업계에서는 내신 절대평가제 전환 시 자사고에서도 높은 내신 성적을 얻기 쉬워져 자사고 쏠림 현상이 심화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올해 전국 단위 자사고 10곳의 입학 경쟁률은 5년 새 최고로 치솟은 상태다. 이에 좋은교사운동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절대평가제 시행의 걸림돌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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