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국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진영에 갇히지 않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올해 11월 총선을 앞두고 외쳤다. 그가 속한 사회민주당은 진보 진영이지만, 보수 진영과 연립정부 구성 등에서 협력하겠다는 뜻이었다.
좋은 말이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선거 전 정치권이 외치는 '협치'란 상대편으로 갈 표를 빼앗아오고 적장을 품어내리라는 통 큰 면모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말 아니던가.
덴마크에서도 "연정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좌파는 좌파끼리, 우파는 우파끼리 꾸린다"는 게 통념이었다. 프레데릭센 총리가 야당 압박에 등 떠밀려 임기 종료 전 조기 총선을 치르는 상황이었던 터라 과감한 시도를 기대하는 시각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 뒤 프레데릭센 총리는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보수 진영의 자유당∙온건당과 연정을 구성했다. 보수·진보 연정 탄생은 40여 년 만이었다. 나아가 국방부∙외무부 장관에 자유당∙온건당 대표를 임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정치적 정적'을 앉힌 것이다. "역사적 결단"이란 평가가 나왔다.
기꺼이 내린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회민주당도 처음에는 좌파 연합만으로 정부를 꾸리고자 했지만, 이탈하는 정당이 생기는 바람에 그럴 수 없게 됐다. 정부 출범이 늦어지면서 부담이 커지자 결국 우파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마지못한 협치'라고 해서 국민들이 그 과정을 타박하진 않았다.
한국의 정치권도 올해 3월 대통령선거 전 협치를 외쳤지만, 당연히 거기에서 끝났다. 당선 직후 "야당과 협치해 국민들을 잘 모시겠다"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가 다 가도록 야당 지도부와 마주 앉지도 않았다. 입법을 좌우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에 협조적인 것도 아니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습관처럼 반복하는 말이 '협치 없음'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전쟁으로 인한 안보 위기와 경제 불안, 기후 재난 등 상대가 썩 내키지 않아도 마주 앉을 수밖에 없는 이슈는 올해 특히 차고 넘쳤다. '협치'라는 말은 또 거짓말로 남은 채 한 해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