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명 남긴 색바랜 국화·추모글 정리…이태원 추모공간, 55일만에 재정비

입력
2022.12.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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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없이 유지된 추모 공간 정리
골목 지켜온 시민 자원봉사자 해산
1번 출구 물품은 정리돼 임시 보관
기록물 보존 방식 미정… "협의 중"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관리해 온 '이태원 추모 시민자율봉사위원회'가 22일 활동을 종료하면서 남긴 소회다. 자율봉사위는 참사 다음 날부터 정부 지원 없이 오롯이 시민들의 힘으로 추모 공간을 유지 및 관리해 온 단체다. 이들은 이날 해밀톤호텔 골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추모 공간에 대한 자원봉사 책무를 공식적으로 마친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태원역 추모 공간은 참사 55일 만에 재정비에 들어갔다. 다만, 추모글이 담긴 포스트잇이나 편지 등 기록물을 장기 보존할 방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과제가 남은 상태다.

추모 공간 자원봉사 종료… "유가족께 인계"

자율봉사위에 따르면 그동안 추모 공간에 다녀간 시민은 15만 명에 이른다. 2만 5,000송이의 국화가 놓였고, 1만 장 넘는 추모 글이 붙었다. 출근길에 30분의 시간을 쪼개 일을 돕던 사람부터 경북 영양에서 올라와 1박 2일간 정리를 도운 시민까지, 거쳐간 자원봉사자도 수십 명에 달한다. 영하의 날씨에도 모두 유족과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지켰다.

50일 넘게 상주하며 추모 공간을 돌봤던 봉사자 강바다(가명)씨는 "부족하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희생자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이제는 유가족분들께 모든 걸 인계해드린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1번 출구 추모 물품은 전날 정리

이태원 1번 출구 앞에 있던 추모 물품은 전날인 21일에 치워졌다. 참사 49재(10월 16일)를 전후로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상인회) 등이 출구 앞을 정리하기로 협의한 것이다.

색이 바랜 국화부터 포스트잇과 편지, 시민들이 두고 간 음식물, 팔찌와 다이어리 등 추모품을 챙기며 일부 유족은 또 한번 눈물을 쏟았다. 박스 50여 개가 금세 채워졌다. 박스에는 '존엄, 평등, 연대.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물품들은 유가족 법률 대응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임시 보관한다.

이 밖에 지하철역 내부와 해밀톤호텔 골목 가벽(假壁)에 조성된 추모 공간은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길 위에 놓인 일부 물품만 정리하고 당분간 보존한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23일 유가족협의회, 상인회 등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 골목 재구성 방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시민대책회의 측은 "이태원역 1번 출구를 기억과 애도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보존 방식 미정… 기록물은 서울기록원으로

각종 추모 물품을 장기적으로 어디에 보관할지 등은 아직 숙제다. 민변의 이태원 참사 대응 태스크포스(TF)는 서울시에서 후보지를 받아 추모 공간으로 지정할 장소를 협의 중이다. 추모 공간에 들어갈 일부 추모품을 제외한 나머지 기록물들은 서울기록원 이관이 논의되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기록물 양이 워낙 많아 이를 위탁 보존할 수 있도록 서울기록원에 요청을 해둔 상태"라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