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드러난 저수지 비탈면에 주름살이 등고선처럼 파였다. 찰랑찰랑 물결이 넘실거리던 지면엔 물 대신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지난 21일 광주·전남 지역 최대 수원지인 순천시 주암호를 찾았다. 며칠 전 내린 큰 눈에도 불구하고 수위는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주 들어 전남 지역에 내린 눈은 최대 50cm가 넘지만 주암호의 수위는 오히려 떨어졌다. 22일 기준 저수율 29.4%. 폭설로도 해갈이 안 되는 '겨울가뭄'이 주암호뿐 아니라 호남지역 대부분을 휩쓸면서, 이 지역 수원지 저수율이 평년 대비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심각한 겨울가뭄으로 인해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물 사용량 20% 감축을 목표로 한 물 아껴 쓰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민들은 공동주택 수도 수압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해 변기 수조에 벽돌과 페트병을 넣어가며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여수·광양 산업단지 내 기업들은 공장 정비마저 미뤄가며 냉각수 재활용에 동참하고, 물을 많이 쓰는 일부 골프장은 하천 취수를 아예 중단했다. 상수도 공급 여건이 원래 열악한 도서 지역은 제한 급수에 들어간 지 오래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제한 급수 지역이 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겨울가뭄은 기존 패턴에서 벗어난 이상 기후에 지자체와 관계 기관이 ‘평소와 다름없이’ 안일하게 대응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올여름 장마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당국은 이 지역 물 공급 상황에 대해 ‘크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다. 평소처럼 여름 장마가 봄가뭄을 해소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반도 기후 특성상 연중 강수량의 대부분이 여름 장마철에 집중돼 있다. 치수 당국은 여름에 모인 빗물을 가둬 다음 해 장마철 이전까지 나눠 쓰는 식으로 수자원을 운용해 왔다. 따라서, 통상 댐·저수지 저수율은 장마 직후가 가장 높고, 직전인 늦봄·초여름이 가장 낮다. 그런데, 현재 호남 지역 주요 수원지의 저수율은 이미 여느 해의 늦봄·초여름 수준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22일 기준 전남 지역 주요 수용댐의 저수율은 30% 내외(주암: 29.4%, 동복: 27.6% 평림: 31.9%)를 기록 중이다. 1년 전 주암댐의 저수율은 47.2%였고, 2년 전엔 62.6%였다. 주요 농수용 저수지인 나주·담양·장성호의 저수율도 평년 대비 54~65% 수준이다.
낮은 저수율에 대한 우려는 연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 수자원공사는 "‘봄가뭄 이후 장마가 오면 저수량이 회복될 것’이라며 용수 제한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역대 최저의 겨울철 강수량을 기록했지만 여름에 내린 폭우 덕분에 겨울가뭄을 겪지 않은 '운 좋은' 경험을 내세웠다.
그러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수도권과 달리, 호남 지역은 올해 최저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수자원공사의 예상과 기대가 빗나간 것이다. 21일까지 올해 전남 지역 누적 강수량은 838.6mm로 50년 기상 관측 사상 두 번째로 적다. 지난해 장마 이후 비가 적게 내리면서 수자원 고갈 시기는 반년가량이나 앞당겨졌다.
지난해부터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는 겨울가뭄에 올겨울 강수량마저 충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자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뒤늦게 물 절약 운동을 비롯해 지하수원을 확보하고 영산강 용수를 비상공급하기 위해 설비 공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해당 설비는 동복호 고갈 예상 시점인 3월을 훌쩍 지나 4월 말에나 완공될 예정이다. 공급 시설이 완공된다 해도 공급량이 통상 일일 용수 공급량의 10%에 불과해 여전히 부족하다.
수자원 고갈 시기를 충분히 늦추지 못하거나, 올해 장마철마저 강수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제한급수 등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는 것은 물론, 산업단지에 공업용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지역경제마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본격적인 농작물 재배가 시작되는 봄 주요 저수지의 수자원 고갈이 예상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