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례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치를 제시한 것이다. 당분간 물가 관리에 집중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규제 완화와 감세로 민간의 활력을 강화해 경제 재도약을 노린다는 게 정부의 내년 경제 정책 구상이다.
2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성장률)을 1.6%로 예상했다. 이는 한국은행(1.7%), 한국개발연구원(KDIㆍ1.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1.8%), 국제통화기금(IMFㆍ2.0%) 등 대다수 국내외 주요 기관 예측치보다 낮다. 지금껏 한국 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제2차 오일쇼크를 겪은 1980년(-1.6%)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코로나19 대유행기인 2020년(-0.7%) 등 네 차례뿐이다.
정부의 ‘냉정한’ 평가는 의외다. 통상 이듬해 경제정책방향과 함께 연말 공개되는 성장률 전망치에는 어떻게든 성장 규모를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은 ‘선의의 분식(粉飾)’이 가능한 여건이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 만큼 가장 솔직하고 객관적인 전망치를 국민께 말씀드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가 예상하는 성장 지표 방향은 전부 하향이다. 올해 6.6% 증가한 수출은 글로벌 교역과 반도체 업황 위축 등으로 내년에 4.5% 감소한다. 글로벌 공급 차질 여파로 올해 1.8% 감소한 설비 투자의 부진은 내년 대외 불확실성 확대와 자금 조달 비용 상승 때문에 심화(-2.8%)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펜트업(억눌렸던 수요가 급속히 살아나는 현상)’에 힘입어 4.6% 증가했던 소비도 고금리에 따른 소득 축소, 자산 가격 하락 탓에 내년에는 증가세가 둔화(2.5%)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성장 지표뿐이 아니다. 올해 81만 명인 취업자 수 증가폭은 내년 10만 명으로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경기 둔화와 방역ㆍ보건 일자리 감소 등 고용 제약 요인이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가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 하락과 수요 위축 등으로 올해(5.1%)보다 상승세가 둔화(3.5%)하겠지만, 여전히 한은 물가 목표치(2.0%)보다 훨씬 높은 데다 인상을 앞둔 전기ㆍ가스요금 등 악재가 수두룩하다.
극복의 관건은 상반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다. 추 부총리는 “내년 경제는 상반기에 수출ㆍ민생 등의 어려움이 집중되고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회복되는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각계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 정책 구상은 단기와 중장기로 나뉜다. 다주택자 취득세 인하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 하향 등 규제 완화는 고금리 영향으로 급속하게 추락 중인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서다. 물가 안정과 생계비 부담 경감 등으로 당장 민생 경제 회복을 돕는 일도 시급하다.
재도약을 위한 두 중점 방향인 ‘민간 중심 활력 제고’와 ‘미래 대비 체질 개선’은 각각 수출 활성화 및 신성장 사업 추진, 노동ㆍ교육ㆍ연금ㆍ금융ㆍ서비스ㆍ공공 등 분야의 구조 개혁이 핵심 추진 과제다. 감세와 규제 완화, 금융 지원 등으로 최대한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내년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의 방점이 찍혀 있다. 다만 정책 다수가 입법이 필요한 것들이어서 여소야대 국회를 넘어 구현하기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