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년(壬寅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 뮤지컬 시장은 코로나19 엔데믹 상황으로 접어들면서 회복세를 넘어 시장 규모만 본다면 예년의 성적을 월등히 넘어설 전망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2022년 공연 전체 시장(콘서트 제외)은 5,145억 원(12월 19일 기준)으로 남은 연말 성수기까지 포함하면 5,43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뮤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이 76.6%로 올해 뮤지컬 시장은 4,150억 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국내 뮤지컬 시장을 ‘3,500억 원에서 4,000억 원 규모’라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티켓 판매금으로만 판단했을 때 뮤지컬 시장이 3,500억 원을 넘은 것은 2018년 딱 한 해뿐이었다. 그것도 그해 티켓 매출액이 가장 컸던 태양의 서커스 '쿠자'가 인터파크 분류 방식으로 뮤지컬에 포함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2022년에 처음으로 뮤지컬 시장 규모는 4,000억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공연 관계자들은 올해 뮤지컬 시장이 크게 성장한 이유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낸다. 해외여행이나 기타 대형 콘서트가 완전히 되살아나지 못한 상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억눌린 여가 활동 욕구가 뮤지컬로 몰렸다는 것이다. 특히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콘서트 시장의 관객이 팬데믹 중에도 공연을 멈춘 적이 없는 유명 스타 출연 뮤지컬로 몰렸다고 분석한다. 일종의 풍선효과로 볼 수 있는데 실제 흥행한 작품들을 분석해 보면 동일한 작품이라도 최근 공연에서 20대 관객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젊은 콘서트 관객이 이동한 것으로 유추하는 근거다.
또한 올해 뮤지컬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대형 제작사가 중소형 창작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라이선스 뮤지컬 '헤드윅', '젠틀맨스 가이드'의 제작사 쇼노트는 올해 대학로 소극장 창작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를 올렸고, 유럽 뮤지컬을 한국에 소개하거나 대형 창작뮤지컬을 주로 제작했던 EMK뮤지컬컴퍼니는 중소형 창작뮤지컬 '프리다'를 만들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대표적 특징은 라이선스 위주의 시장이라는 점이다. 이는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나 독일, 호주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점령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작품 수로는 20%대에 불과한 라이선스 뮤지컬이 한국 뮤지컬 시장 규모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작품 수로는 70%를 차지하는 창작뮤지컬의 시장 점유율은 30%에 머문다. 30%대도 2017년 이후에나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점차 이러한 구도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 올해 뮤지컬 시장에서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가 가장 높은 매출액을 기록했고 '마타하리' 역시 매출 랭킹 10위권에 포함됐다. 대학로에서 흥행하는 신작 내지는 스테디 창작뮤지컬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이미 중소극장 뮤지컬은 창작뮤지컬이 라이선스 뮤지컬을 압도한 상황이다. 올해 초연한 창작뮤지컬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렛미플라이' 등은 대중성과 작품성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내년에도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공연을 주로 해왔던 뮤지컬 제작사가 창작뮤지컬 제작에 나서면서 앞으로 창작뮤지컬 성장에 기대를 모은다. 대표적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사인 에이콤이 연말부터 '영웅'을 장기 공연하고, 내년 초 EMK뮤지컬컴퍼니는 '비엔나 뮤지컬' 창작자 쿤체, 르베이 콤비를 내세워 새로운 대형 창작뮤지컬 '베토벤'을 올린다. 내년 연말에는 새로운 대형작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선보일 예정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명가 신시컴퍼니 역시 '시스터스'라는 중형 창작뮤지컬을 내년 라인업에 올렸다. 이 외에도 오디컴퍼니는 해외에서부터 창작뮤지컬 제작을 하고 있고, CJ ENM 역시 자사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창작뮤지컬 개발이 진행 중임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충분히 2023년도가 창작뮤지컬 약진의 해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 시장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많은 이가 올해 뮤지컬 시장의 흥행세가 2023년에도 지속할지 궁금해한다. 콘서트 시장이 회복된다면 다시 젊은 뮤지컬 관객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많은 공연 관계자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콘서트 시장 회복으로 어느 정도의 젊은 관객 이탈을 막을 수 없겠지만 한 번 뮤지컬을 경험한 관객은 다시 뮤지컬 공연장을 찾을 확률이 높다. 또한 올해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관객들이 뮤지컬 공연장을 찾고 있다는 게 검증됐기 때문에 제작사는 올해보다 더 적극적으로 작품 제작에 임할 것이다. 올해 최대 기대작 '물랑루즈!'가 연말부터 내년 시장으로 넘어가고, 한국 뮤지컬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오페라의 유령'이 14년 만에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라이선스 공연을 선보인다.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해외 투어팀의 내한 공연 역시 다시 시도될 것이다. 이미 '캣츠'와 '시카고' 투어 공연이 발표됐다. 게다가 앞서 말한 대로 창작뮤지컬 시장의 성장도 이어질 것이다. 2023년 한국 뮤지컬 시장의 관건은 내년에도 4,000억 원을 넘어설 수 있을지가 아니라, 올해 시장 기록을 얼마나 넘어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