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망신주기'로 노동개혁 되겠나

입력
2022.12.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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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 인사들이 연일 노동조합의 재정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부도 과단성 있게 요구할 것”이라고 운을 띄우자 여당 인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조 재정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300인 이상 노조의 회계자료 정부 제출 의무화를 골자로 한 노조법 개정안을 20일 발의했다.

회계 투명성은 어떤 조직이든 지켜야 할 대원칙인 만큼 노조라고 예외일 순 없다. 그러나 정부가 노조의 회계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노조 활동을 규율하는 우리 노조법은 노사 자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이를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노조는 이 법에 근거해 자체적으로 회계 상황을 감사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은 누구나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노조에 대한 국고지원금도 정부와 지자체가 매년 외부에 의뢰해 적정성을 심사하고 있다.

현재 특별히 노조의 회계부정이나 국고보조금 유용 사건이 없는데도 정부 여당이 잇따라 노조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는 행보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여소야대를 감안하면 일방적인 관련 법 개정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법 통과가 안 되더라도 “거부하는 노조만 나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개혁에 발목 잡는 노조’라는 낙인찍기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때 발생한 일부 조합원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파업 전체를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거나, 건설현장에서 노노갈등을 유달리 강조하는 등 노조 불신을 부추겨왔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개혁에는 파견법 개정, 취업규칙 변경 시 노조동의권 약화 등 노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쟁점들이 많다. 노조를 흠집 내고 망신 주는 방식으로 일부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인 노조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설득하지 않으면 노동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서구의 여러 사회적 대타협 사례가 방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