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카이코넨 핀란드 국방부 장관이 곧 육아휴직을 한다.
국제사회는 화들짝 놀랐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전쟁 폭주는 멈출 기미가 없는데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이 자리를 비우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더구나 핀란드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사활을 걸고 있어서 국력을 총동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토 가입은 국방부 소관 업무다.
정작 핀란드는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오히려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휴직 사용은 훌륭한 결정"이라며 박수 치는 사람도 많다. 핀란드가 성평등을 중시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공적 영역만큼 사적 영역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과도 연결돼 있다.
카이코넨 장관은 트위터에 "다음 달 6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간다"고 알렸다. 그는 2세와 6개월, 두 아들의 아빠다. 그가 낸 육아휴직 기간은 총 54일로, 공직자 규정상 쓸 수 있는 휴가를 꽉 채워 쓰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남성 장관이 장기 육아휴직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부재 중에는 같은 정당인 중도당의 미코 사볼라 의원이 임시로 장관을 맡는다.
카이코넨 장관은 휴직 사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 올해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집 밖에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공직자의 책임 방기라는 일각의 시선을 카이코넨 장관은 일축했다. 그는 "육아휴직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는 없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때를 기다리기 시작하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했다. 또 "국방부 장관뿐만 아니라 어떤 직장에서도 대체 인력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며, 아이들에게도 부모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고도 했다. 아울러 "(나의 부재 중에도) 조국은 안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핀란드는 그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재무부 장관인 아니카 사리코 중도당 대표는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당에서도 "훌륭한 해결책"(국민연합당)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카이코넨 장관의 육아휴직이 순조로웠던 건 '육아는 남성과 여성 공통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핀란드에선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핀란드 남성 80%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이는 높은 성평등 인식에 기반한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성평등 국가 순위에서 핀란드는 올해 2위였다. 카이코넨 장관이 육아를 전담하기로 하면서 배우자인 야니카 카이코넨은 내년 1월 1일부터 제약회사 홍보 이사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커리어를 잠시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쓰는 사례가 세계적으로 많아지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주요 지위에 여성·청년 진출 비율이 높아진 것과도 무관치 않다.
헬렌 매켄티 아일랜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첫 출산 뒤 6개월간 육아휴직을 냈고, 최근 둘째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내각 개편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법무부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다. 케이트 포브스 스코틀랜드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난 8월 출산 뒤 육아휴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