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에 투자 확대" 국내 진출한 유럽 VC, 피에르 주 코렐리아캐피탈코리아 대표

입력
2022.12.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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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펠르랭 전 프랑스 장관이 설립한 프랑스 VC
"국내 스타트업 15개사 및 영화, 드라마 제작에도 투자할 것"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 18개월 예상

프랑스 파리에 본사가 있는 코렐리아캐피탈은 신생기업(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유럽의 벤처투자사(VC) 중 처음으로 국내에 진출했다. 이 업체는 대표와 투자자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창업자 중 한 사람인 플뢰르 펠르랭 대표는 아기 때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인으로,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밑에서 디지털경제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을 지낸 화제의 인물이다.

네이버도 관련이 깊다. 네이버가 전략 투자한 스타트업 펀드를 이들이 운용한다. 그런 점에서 네이버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네이버는 이들을 통해 유럽의 명품 스피커 드비알레와 온라인 명품 판매업체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등에 투자했다.

그만큼 코렐리아캐피탈은 관심의 대상이지만 노출된 적이 별로 없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펠르랭 대표와 함께 코렐리아캐피탈 설립에 참여한 피에르 주(한국명 주용국) 코렐리아캐피탈코리아 대표를 만나 이들의 전략과 스타트업 투자 전망을 들어 봤다.

"한국과 아시아 시장 확대" 국내 법인 만든 이유

코렐리아캐피탈은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기 위해 지난 4월 국내 법인을 세웠다.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해 유럽 진출을 돕고 유럽 스타트업의 한국 진출을 지원해요."

이런 작업들은 파리 본사와 한몸이 돼서 움직인다. "딱히 본사와 지사로 나눈 개념이 아니에요. 국내 법인과 본사가 긴밀하게 협조해 주요 전략 사항을 함께 결정하죠. 매주 월요일 본사와 영상 회의를 하고 본사에서 서울에 자주 와요."

유럽 스타트업들은 한국을 매력 있는 시장으로 본다. "유럽 스타트업들은 협업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 있고 명품 등 소비자 시장이 큰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소비 트렌드에서 앞선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언어와 문화가 달라 국내 진출을 어려워하는데 이를 우리가 해결해줘요. 이를 감안해 중국을 제외한 한국, 일본, 동남아 시장을 보고 국내 법인을 만들었죠. 우선 한국에 집중합니다."


"한국 스타트업 15개사에 투자할 것…영화, 드라마, 게임 제작도 고려"

이들은 총 3개 펀드를 운영한다. 모두 파리 본사에서 운영하며 국내 법인은 별도 펀드를 만들지 않았다. "2억 유로 규모의 1호 펀드는 스타트업 투자가 끝났어요. 2호 펀드는 3억 유로 규모로 펀드 구성을 위한 투자자를 모집 중이며 절반 이상 확보했죠. 2호 펀드를 이용해 10~15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할 것입니다."

3호 펀드는 네이버 특화 펀드다. "네이버 사업에 연계 효과를 낼 만한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위해 만든 프로젝트 펀드로, 2억3,000만 유로 규모죠."

투자는 유럽 본사 전체 직원 13명, 국내 법인 직원 3명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에서 결정한다. "투자 기업을 발굴하면 한국과 유럽 직원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요. 이후 투자 대상 스타트업에서 영상회의를 통해 회사와 사업 소개를 하죠. 이후 평균 3개월 안에 투자 여부를 결정해요."

투자 대상은 어느 정도 시장에서 검증된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스타트업들이이다. "시리즈B 단계의 투자가 필요한 곳 중 시장에서 검증된 스타트업 위주로 투자해요. 시리즈A 단계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도 해외에서 가능성 있으면 투자하죠."

주 대표가 매력적으로 보는 국내 스타트업은 정보기술(IT)과 콘텐츠, 생활 분야 기업들이다. "자동차, 우주항공, 핵공학 분야에 혁신적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은 유럽에서 사업 기회가 많아요. 관련 분야의 대기업들이 유럽에 많거든요. 또 식음료와 농업기술(애그테크) 스타트업에도 투자할 생각입니다."

한류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한류 열풍이 한창이어서 독자 콘텐츠와 관련 기술, 웹툰, 가상공간(메타버스) 기술과 서비스를 가진 한국 스타트업들을 눈여겨보죠."

한류 콘텐츠 제작에도 투자할 방침이다. "1980년대 프랑스에서 한국에 편지를 보내면 간혹 북한으로 갔어요. 한국을 잘 몰랐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 파리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인사해요. 한류 콘텐츠가 유럽에 전파되며 인기를 끈 덕분이죠. 그만큼 한국 콘텐츠가 유럽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 게임 제작사에도 투자할 예정이에요."

볼트, 레저,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등 유니콘에 줄줄이 투자

지금까지 코렐리아캐피탈이 투자한 스타트업은 모두 22개사다. 이 가운데 7개사가 기업가치 1조 원 이상 평가받는 유니콘이다.

주 대표가 대표적으로 꼽은 유망 투자기업이 유럽의 명품 스피커 드비알레다. 드비알레는 책상 위에 놓는 작은 스피커가 수백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싸다. 명품들을 줄줄이 거느린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도 투자한 업체다. "2016년 드비알레에 투자했어요. 투자 전 매출에서 아시아 비중이 10%였는데 투자 이후 60%까지 올라갔어요."

유럽의 우버로 꼽히는 볼트에도 투자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 본사가 있는 스타트업으로, 기업 가치가 약 10조 원이죠. 2018년 VC 중 우리가 처음 투자했어요. 자동차뿐 아니라 자전거, 전기 스쿠터 등 친환경 이동수단까지 모두 제공하는 것이 장점이죠."

기업가치 2조 원의 프랑스 보안기술 업체 레저도 유망 투자업체 중 하나다. "레저는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전자지갑을 소프트웨어와 USB 형태의 하드웨어 등 2가지로 제공해요. 하드웨어 전자지갑 중 전 세계 1위죠. 1980년대부터 신용카드용 반도체를 개발한 곳이어서 보안 기술이 뛰어나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프랑스 온라인 명품 판매업체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에도 네이버 사업을 위한 3호 펀드를 통해 투자했다. 즉 네이버가 투자한 업체로, 최근 국내에도 진출(한국일보 11월 15일 보도)했다. "이 업체는 명품 중고거래 분야에서 유럽 1위, 미국에서도 1, 2위를 다투죠. 앞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유럽 명품을 많이 소개할 겁니다."


한국 스타트업, 빠른 성장 속도 장점이나 경직된 조직 문화 바꿔야

주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 속도를 매력으로 꼽는다. "한국 스타트업은 시장 변화를 빨리 파악해 혁신하는 장점이 있어서 유럽 진출에 유리해요. 유럽은 디지털 건강관리,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 분야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죠. 특히 SaaS 스타트업은 외부업체 이용(아웃소싱)에 익숙한 유럽 대기업들과 일할 기회가 많아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스타트업들도 유럽에서 기회가 많다. "AI가 성공하려면 많은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데 한국은 미국 중국에 비해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시장이 작죠. 이를 해결하려면 유럽과 전략적 협력을 해야 합니다. 네이버는 이를 염두에 두고 프랑스 남부에 AI 관련 연구개발센터를 인수했어요. 앞으로 유럽과 한국의 AI 협력이 늘어날 겁니다."

반도체와 생명공학(바이오) 분야는 유럽의 역내 시설 유치 분위기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유럽은 미국이 반도체 시설을 자국 내 유치하는 것에 맞서 반도체 시설 독립이 필요하다고 봐요. 바이오도 코로나19 이후 제약 생산시설을 유럽에 유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따라서 한국 반도체와 바이오 스타트업이 유럽에 접근하기 용이하죠."

다만 한국 스타트업의 경직된 조직 문화는 보완점으로 꼽힌다. "유럽에 비하면 한국 스타트업은 아직도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등 조직문화가 경직됐어요. 채용도 다양하게 개방할 필요가 있죠."

파리 특파원 출신 부친, 파리에서 나고 자라

주 대표는 아버지가 1970, 80년대 국내 일간지의 파리 특파원을 지내 파리에서 태어나 대학원까지 마쳤다. "파리 경영대학원(ESCP)에서 재무학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2000년 학업을 마치고 넷인텔리젠츠라는 마케팅 분석회사를 세웠죠. 전 세계 3위 광고업체 퍼블리시스가 이 회사를 인수했으니 성공했죠."

이후 그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유럽 유명 컨설팅업체 아탈리와 자코메티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아탈리는 프랑스 대통령 자문을 지낸 자크 아탈리가 설립했으며 자코메티는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킹메이커 피에르 자코메티가 세웠다. "프랑스 미디어그룹 라가르데르는 싸이월드, 오마이뉴스 등 한국 디지털 기업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런 기업들을 위해 한국 디지털 기업들을 연구하는 일을 했죠."

2011년 그는 한국에 돌아와 2년간 와인 수입 및 유통회사를 운영했다. 이후 컨설팅 사업을 하던 중 2016년 펠르랭 대표 요청으로 코렐리아캐피탈 창업을 도와주다가 합류했다. "펠르랭 대표와 저를 포함해 4명의 창업 파트너가 코렐리아캐피탈을 시작했어요. 펠르랭 대표는 파리에서 '21세기 클럽'이라는 시민단체(NGO)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됐죠. 21세기 클럽은 정치권, 대기업, 언론 등 프랑스 엘리트 집단에 이민자 등 다양성이 부족해 이를 바꾸려는 단체였어요."


“투자 혹한기, 18개월 이상 갈 것”

앞으로 주 대표는 국내 법인을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투자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VC 가운데 유럽과 한국을 연결하는 곳은 없어요. 외부인 시각으로 한국 스타트업을 보고, 반대로 프랑스를 한국 스타트업 시점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장점이죠."

다만 얼어붙은 스타트업 투자가 길어질 전망이어서 걱정이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적 변수들이 빨리 개선되지 않을 겁니다. 2024년까지 최장 18개월 이상 스타트업 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판단해요. 그동안 투자를 중단하지는 않지만 조심스럽게 투자하는 방향으로 바뀌겠죠."

그만큼 스타트업들에는 혹독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가치가 내려가서 적은 돈으로 투자할 수 있으니 유리할 수 있죠. 반면 스타트업들은 길게 보고 비용을 절약하며 버텨야 합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