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조 재정 운영의 투명성처럼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있어선 정부가 과단성 있게 요구하겠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노동계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정부가 노동조합 회계를 들여다볼 뚜렷한 근거도 없어 적절성 논란도 일고 있다.
19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정부가 재정 운영 상황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부분은 국고 지원에 한정된다. 민주노총 측은 '자주성의 원칙'을 내세우며 정부 지원을 거부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사무실 건물 보증금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원받는 보증금은 국회가 매년 들여다보고 있어 투명성 운운할 게 없다"며 "한 총리가 이걸 모르고 얘기한 거면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정부로부터 27억 원을 지원받았다. 명목은 △노조 간부 교육 사업 △정책 연구 사업 △법률상담·구조 사업 △국제회의 및 교류·홍보 사업 △교육시설 활성화 방안 연구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국고는 모두 e나라장터 등 규칙에 따라 쓰고 있고 외부 회계감사까지 받아 제출하고 있다"며 "더 이상 투명하게 할 방법도 없다"고 설명했다.
국고와 상관없는 자체 회계의 경우 양대노총 모두 감사인을 두고 대의원대회를 거치는 등의 절차를 마련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우리나라 모든 사단법인을 다 들여다볼 것도 아닌데 노조에 대해서만 이러는 건 자주적 조직에 대한 권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결산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데, 근거도 실효성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명백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대응할 필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노조의 재정을 살펴보겠다는 것에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법 제27조에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칙은 있지만, 어떤 경우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지 않아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해당 조항이 들어 있는 노조법에 따르면 노조는 '자주적·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곳이고 제3자가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공익에 문제가 없는 이상 정부가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노조 억압, 통제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 총리 발언과 관련해 "노조 재정 투명성에 대한 불만이 있다 보니 노사 등으로부터 의견을 받아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한 총리 발언은 고용부와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