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헬렌 켈러에게, 1937년 7월 14일, 책상.'
신체적 중증 장애를 극복한 미국 교육자이자 사회 운동가로 유명한 헬렌 켈러(1880~1968)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을 방문해 책상을 구매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발견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936년부터 1958년까지 22년 동안 국내에서 우리 문화재를 사 간 외국인 정보를 담은 '고객 장부'를 19일 공개했다.
이 장부엔 '1937년 7월 14일 존경하는 헬렌 켈러에게 애정 어린 안부와 행복이 가득하길 빌며 조선 경성의 시민이'란 뜻의 영문 'To Miss Helen Keller With Admiration, Affectionate Regards, Best Wishes From the Citizens of Keijo, Chosen, July 14, 1937.'과 책을 펴 보거나 글씨를 쓰는 데 사용하는 작은 책상 즉 서안을 일컫는 영문 'Writing Desk' 등이 적혀 있다. 재단은 이 메모 속 서안의 수신인을 그 유명한 여성인 헬렌 켈러로 추정했다. 근거는 그가 1937년 7월 11일부터 16일까지 한국에 머문 옛 기록이었다. 재단 관계자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당시 헬렌 켈러가 부산에서 대구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여정이었다"며 "서안 구입 날짜(1937년 7월 14일)와 헬렌 켈러가 서울에 머문 일정이 같아 동일인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옛 신문 등을 보면 헬렌 켈러는 일본에서 장애인들의 생활 실태를 조사한 뒤 한국을 찾았다. 그는 1937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 머물렀고,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등에서 강연했다. 당시 헬렌 켈러는 "여러분은 조선의 맹아들을 도와 그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해달라"고 조선인에게 당부했다. 당시 그의 나이 57세였다.
헬렌 켈러가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안 기록은 서울 중구 덕수궁 맞은편 태평로에 위치했던 '사무엘 리 고미술상'의 고객 장부에서 나왔다. 장부엔 그의 가게에서 한국 미술품을 사 간 수백 명의 서양인과 일본인 고객의 이름, 판매 일자, 주소, 품목 등이 적혀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 장부는 현재까지 알려진 최대 규모의 한국 문화재 구입 외국인 명단"이라고 평가했다.
이 고객 장부는 미국인 로버트 마티엘리(97)씨가 한국 문화재 관련 자료 총 60점을 재단에 기증하면서 실체가 파악됐다. 마티엘리씨는 도난당했던 18세기 불화 '송광사 오불도'를 2016년 우리나라로 돌려보낸 인물이다. 미국 오리건주에 거주 중인 그는 1958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에서 30여 년간 미8군 사령부의 문화부 미술공예과장 등으로 일하며 총 1,946점의 한국 문화재를 수집했다.
그는 1962년 미8군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 화가' 박수근의 전시회 리플릿과 한국에서 고미술상 등으로부터 받았던 명함 58점 등도 함께 기증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 명함들에선 외국인에게 한국 미술품을 취급하던 여러 상점의 정보가 확인된다"며 "이를 추적한다면 1960~80년대 한국미술이 해외로 수집되어 나간 출처를 더 광범위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