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운명교향곡'

입력
2022.1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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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베토벤 교향곡 5번 초연


제2차 세계대전 나치 치하의 유럽인이 연합국 전황을 청취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영국 BBC 라디오의 뉴스 시그널 음악은 적국인 독일 작곡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운명)’ 도입부였다.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티브이기도 한 ‘GGG-E플랫’ 네 음이 모스부호로 ‘승리(Victory)’의 첫 글자 ‘V(···-)’였기 때문이다.

베토벤 음악의 절정으로 꼽히는 ‘교향곡 5번 다단조 작품번호 67’은 하지만 1808년 12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in Vienna)’ 초연에서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연주 자체가 엉망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아마추어 수준이었고, 1부 두 번째 곡인 아리아 ‘아! 못 믿을 이여(Ah! Perfido)’는 원래 솔리스트가 연습 도중 베토벤의 모욕을 못 견뎌 하차하는 바람에 경험 없는 10대 소프라노가 대신 맡았고, 리허설도 한 번밖에 못했을 만큼 연습도 부족했다.


공연장 예약부터 난관이었다. 당대 독일어권 최고의 극장이어서, 가장 인기 있던 오페라 공연에 밀려 자리를 얻기 힘들었다. 노동자 일주일 치 급여보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관객은 주로 빈의 귀족이었고, 그들이 시골 영지로 떠나는 여름은 공연 휴지기였다. 클래식 연주 콘서트가 가능한 건 오페라 공연이 금지되는 대림절과 사순절 사이 약 6주가 사실상 전부였다. 당시 전문 오케스트라단은 연중 자선 콘서트 의무 연주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했다. 베토벤의 영리 연주회는 대규모 자선 콘서트 기간과 겹쳐 있었다.

그런 사정 때문에 당시 공연은 서너 시간씩 진행되는 게 예사였고, 베토벤의 콘서트도 4시간가량 진행됐다. 무척 추운 날이었고, 극장은 난방시설이 없었고, 2부 첫 곡인 교향곡 5번 말고도 1부 첫 곡(교향곡 6번 전원, Op.68)과 마지막 곡(피아노협주곡 4번 Op.58)이 모두 초연작이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