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노숙인 돌보는 '국숫집' 대표··· “복지제도가 인정머리 없을 때가 있어요”

입력
2022.12.26 04:30
8면
[노숙인, 가장 낮은 곳에]
②주소가 없으면 복지도 없다? 
주소 없는 노숙인은 복지제도서 '없는 존재'
기초연금은 주소 없어도 되지만 2%만 받아
“공무원 휴가에, 치료 방치된 노숙인 숨져”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노숙인 문제를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취약 계층의 현실을 더 돌아보는 연말이 되길 바랍니다.


"주소지가 없으면, 아예 모든 게 안 돼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나, (말소된) 주민등록 되살리려면 주소가 필요하죠. 우리나라 복지제도 특징이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먼저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이상 가만히 있다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지원 사례를) 발굴하려는 경우는 극소수고요."

지난달 28일 인천 동구 화수동의 '민들레국수집'에서 만난 서영남(68) 대표의 말이다.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의 작은 쉼터'인 이곳에서 20년째 노숙인들을 돌봐온 서씨는 한국의 복지제도를 이렇게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주소지가 없으면 기초생활수급자조차 될 수 없다. 긴급복지지원 등 다른 사회 보장 영역에서도 주소지가 없으면 '없는 존재'나 다름없다.

그나마 만 65세 이상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거주불명자여도, 주민등록만 살아있으면 신청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수령자는 극히 일부다. 보건복지부 기초연금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거주불명자 4만7,121명 중 실제로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인원은 945명(2.0%)에 불과했다.

오랜 노숙인과의 동행을 실천해 온 서 대표는 노숙인 제도의 문제점도 꿰뚫고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한국의 노숙인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힘든 시기일수록 가난한 이는 더 어려워진다

"부자들은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어요."

서 대표는 25년간 수도원 수사 생활을 하다, 2003년 4월 전 재산 300만 원을 털어 '식당 주인'이 됐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목·금을 제외한 주 5일 오전 10시~오후 5시, 어느 때든 찾아가면 뷔페식 밥상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운영비는 오롯이 개인 후원으로 충당한다.

한때 400~500명에 달했던 손님은 최근엔 200~300명대로 줄었다. 서 대표는 "코로나로 노숙 손님들 만나기 어려워졌다"며 "우리가 모르는 새 많이들 떠나셨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그가 아는 것만 해도, 지난해 동인천역 인근에서 노숙하던 7, 8명이 세상을 등졌다.

손님 대부분은 중장년 남성인 'VIP 노숙 손님'이다. 인천은 물론 서울부터 지하철을 타고 오거나, 1시간씩 걸어오는 이들도 있다. 인근 달동네에 사는 어르신들도 주된 손님이다. 보통 하루 한 끼만 지원하는 무료급식소와 달리, 이곳에선 두 끼, 세 끼를 먹어도 괜찮다. 선착순 줄서기도 없다. 도착 순서와 관계없이 '약자'부터 배식하는 게 이곳의 원칙이다. 전날 하루 온종일 굶은 이에게, 손님들도 서로 양보한단다.

'노숙인 손님'에게 복지제도 찾아주는 행복

하루에도 수백 명씩 찾아오는 노숙 손님들을, 서 대표는 오래 찬찬히 살핀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며, 당사자의 마음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각자도생 무한경쟁 사회에서 낙오됐거나, 사랑을 충분히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오며 마음을 다친 이가 많기 때문이다.

"저도 처음엔 쉽게 쉽게 도움을 드리려고 했죠. '뭐 필요하신 것 없냐' '방 얻어드릴 수 있다'고 하면서요. 그러면 열에 아홉은 삼십육계 줄행랑이에요, 허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배려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거든요. 노숙하는 사람을 처음에 보면, 사기를 당하거나 냉대받아서 일어설 힘이 없어요. 그래서 계속 이 사람이 살려고 하는지, 신경 쓰고 살피는 거죠. 본인이 살려고 하면 그때부터는 어려울 게 하나 없어요."

20년간 민들레국수집을 찾았지만 매번 도움은 사양하던 한 노숙인이, 올해 가을 다른 노숙인이 서 대표 도움으로 방을 얻어 자립하는 걸 보고 드디어 도움을 청했다. 서 대표는 그에게 월세 21만 원 여인숙을 얻어주고, 기초생활수급자와 긴급지원 신청을 도왔다. "곧 수급자 확정이 되실 거예요. '요즘 가장 행복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방을 얻었어도 수급자 신청부터 확정되기까지는 다시 2~3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인천은 그나마 서울보다 방세는 낮은 편이라, 월 20~30만 원이면 여인숙, 고시원 방을 얻을 수 있다.

"이럴 때 보면 복지제도가 너무 인정머리가 없지요. 당장 상황이 어려워서 밥도 못 먹는 사람에게 '두 달 후에나 된다' 이렇게 하니까. 물론 신청 허가 전에 미리 주는 방식도 쉽지는 않을 거예요." 서 대표의 말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 복지 서비스를 받거나, 아예 함께 일을 돕는 '민들레 식구'가 돼 자활을 하게 된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현재는 '민들레 식구'로 일을 돕는 이가 3명이다. 이날도 벌써 식구가 된 지 10여 년째인 두 사람과 자원봉사자 한 명이 서 대표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 국민에게 주는 코로나 지원금도 처음엔 제외

2020년 5월 코로나 상황에서 전 국민에게 지급됐던 '정부 재난지원금'도 애초에 주소지 중심 신청방식이어서, 지원에서 배제된 노숙인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다 시민단체 홈리스행동 등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행정안전부는 뒤늦게 그해 6월부터 "거주불명 등록자는 전국 어느 주민센터에서나 신청·수령 가능하다”고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 역시 타지에 주민등록이 살아 있는 노숙인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예컨대 서울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부산이나 군산에 주소지가 있다면 그곳에서 신청하고 그곳에서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노숙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소득보조'(49.2%)인데도(보건복지부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집이 없다는 이유로 오히려 집이 있는 사람보다 지원을 못 받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생활시설(자활·재활·요양)에 거주하는 노숙인은 60.7%가 생계급여, 기초연금 등 공적 소득지원이 주수입원이었지만, 거리 노숙인은 17.4%만 공공부조가 주수입원이었다. 대부분 건설 일용직 등 일반근로(36.9%)나 공공근로(40.6%), 적선(2.2%)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해외 국가들은 다르다. 영국은 통합급여(유니버설 크레딧) 신청자가 일정한 거처가 없는 경우, 가족이나 지인의 주소, 호스텔 주소, 직업소개소 주소를 임시로 쓸 수 있게 한다. 미국도 영구 주소 없이 친구·친인척·지인이나 쉼터 주소를 대신 사용해 경기부양지원금(EIP)을 지급받을 수 있게 하는 등 '대체 주소지'를 통해 거리 홈리스가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 물론 한국도 여인숙, 노숙인 쉼터 등에 주소를 등록할 수 있지만, 이들 국가에 비해서는 범위가 턱없이 좁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로는 동네병원 못 간다

서 대표는 2010년부터 인하대병원의 도움으로 '민들레진료소'를 열어 왔다. 그러나 2020년 2월부터 코로나 상황으로 현재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다. 국숫집에 진통제, 연고 같은 간단한 상비약은 구비돼 있지만 증상이 심각한 경우엔 역부족이다.

“전에 한 분이 걷지를 못해서 급하게 지팡이 마련해드리고, 주소지도 만들어서 긴급의료지원을 받았어요. 심장이 아주 안 좋아서 인하대병원에서 입원치료하시는데, 치료비가 300만 원이 초과됐죠. 초과분을 일단 제가 내고 퇴원했어요. 추가 치료를 해야 하는데, 구청 담당 직원이 하필 휴가를 갔죠. 휴가 끝나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그분이 죽었어요. 자기가 못 하면 옆 직원에게라도 맡겨 놨으면 좋았을 텐데···." 서 대표는 야속한 듯 말을 흐릴 뿐이었다.

해당 노숙인이 도움 받은 제도는 위기 상황에 놓인 국민에게 생계·의료·주거 등 급여를 일시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 제도다. 의료지원은 1회 300만 원까지 가능하고, 심의위원회를 거치면 1회 추가지원도 되는데 이 후속절차가 중단됐던 것이다.

시설 노숙인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시설수급자'로서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일정한 거처가 없는 거리 노숙인은 상황이 다르다.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몸이 아플 때 시설 노숙인은 절반(45.9%)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답한 반면, 거리 노숙인의 37.5%는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고, 17.9%는 '무료 진료소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거리 노숙인을 위한 ‘노숙인 1종 의료급여제도’가 있지만, 일시보호시설이나 자활시설(쉼터)에 입소해야만 신청 가능하다. 시설이 없는 지역에선 급여 신청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노숙인 1종 급여가 있어도, 동네병원엔 갈 수 없다. 지정된 의료시설에서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올해 2월 기준 전국 지정병원은 291곳뿐이다. 이마저도 80%는 보건소고, 종합병원은 40곳도 안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2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라"고 복지부에 권고했으나, 복지부는 내년 3월까지 임시로만 모든 1·2차 의료급여기관(요양병원을 제외한 의원·병원·종합병원 등 총 7만3,000여 곳)으로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한 상태다.

"자립 준비할 '환대의 집' 만드는 게 바람"

한번 가닿은 도움의 손길이 자립까지 이어지려면 노숙인 당사자의 노력과 의지도 필요하지만, 제도적 뒷받침과 지역 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

서 대표는 "우리 손님들 중에 도와드려서 취직 후 월급이나, 긴급생계지원금으로 100만 원, 200만 원 받으면 그간 못 한 것, 술을 마신다든가 해서 다시 나자빠지는 경우도 있죠. 사람을 도울 때 '돈이 된다' '일자리가 된다'고 해서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마음의) 훈련도 필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노숙인들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면 3,000원 '용돈'을 주는 이유다. 노숙 손님들에게 '스스로 말하는 법'을 되찾아 주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억압을 받고, 소외되고, 가난해지면 '말'을 못 하게 됩니다.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욕만 얻어먹고, 야 야 소리 듣다 보니까. 말을 잊으면 시키는 대로 하며 사는 수밖에 없게 돼요. 그런데 말을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살아납니다. 스스로 말하게 하고 들어주는 게 노숙 손님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서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요즘 꿈꾸는 게 '환대의 집'을 만들고 싶어요. 손님들이 노숙에서 벗어나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 할 때 주소지로 쓰고, 서너 달 지내면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는 곳이요. 그런 곳이 있으면 아주 재밌겠다, 생각하죠. 돈을 조금씩 모으고는 있는데 언젠가는 되겠죠."

◆노숙인, 가장 낮은 곳에

①노숙인 거리상담에 동행하다

②주소가 없으면 복지도 없다?

③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