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16일 안보전략 문서를 개정해 ‘반격 능력' 보유를 선언했다. 이로써 북한이 공격에 나서는 급박한 상항에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근거가 마련됐다.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는데, 되레 일본의 군사 야욕을 차단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더구나 일본의 공세적인 움직임에 미국이 적극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의 운신 폭은 더 좁아질 처지다.
일본은 날로 고조되는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위협을 명분으로 안보문서를 개정했다. 이 중 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북한 관련 부분이다. 기존 문서에서 ‘국제사회의 심각한 과제’로 규정한 북한을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으로 표현했다. 북한이 올 들어 30차례 이상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일부가 일본 상공을 통과하거나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지면서 경각심이 커진 탓이다.
문제는 북한의 공격이 임박하거나 실제 공격에 나설 때 일본이 방어를 빌미로 한반도에 진입하는 경우다. 우리 헌법 3조는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규정했다. 따라서 북한도 법적으로 우리 영토다. 일본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셈이다.
이에 외교부는 안보문서 개정 발표 직후 “반격 능력 행사와 같이 한반도 안보 및 우리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사전에 긴밀한 협의와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앞서 “우리가 먼저 요청하지 않는 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영공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5월 인사청문회)라고 못 박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본의 계산은 달라 보인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16일 외신 브리핑에서 “반격 능력 행사는 다른 국가의 허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본의 자위권 행사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일본 열도가 군사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얼마든지 한반도를 향해 미사일을 쏘거나 함정과 전투기를 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잇단 도발과 중국의 호전성을 마주한 국제사회 분위기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당장 미국이 일본 편을 들고 나섰다. 백악관은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에 대해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치켜세웠다. 정부의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8일 “북한의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자체 판단으로 즉각 반격하겠다는 일본 입장은 국제사회의 원칙과 규범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라며 “그런 일본을 상대로 안보 협력을 해야 하는 우리 정부 입장에선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기승을 부리자 한미일 안보협력에 주력하며 일본과도 군사적으로 밀착해왔다. 3국 해군이 5년 만에 대잠수함 훈련을 재개했고, 3국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의 속셈이 명확해지면서 이 같은 협력기조를 마냥 고수하기에는 부담이 커졌다.
다만 미군의 역할에 따라 우려가 줄어들 여지는 남아 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일본을 공격한다면 1차적 대응은 주일미군이 맡을 것"이라며 "한반도와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이 중재와 조정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일 간 군사적 긴장 고조는 기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