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의회가 구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의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홀로도모르'를 '구소련에 의한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인한 죽음'이라는 뜻으로, 1932년부터 2년간 300만 명 이상이 기아로 굶어 죽은 사건을 칭한다. 의회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행태가 90년 전 스탈린의 잔혹함을 닮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6일(현지시간) 유럽의회에 따르면, "홀로도모르를 집단학살로 규정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채택됐다. 찬성은 507표였고, 반대는 12표, 기권은 17표였다. 당시 대기근이 자연재해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라, 구소련이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국민들을 집단학살할 목적으로 시행한 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EU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다.
스탈린 체제의 구소련은 우크라이나 농지를 몰수했고 헌납을 거부하면 망가뜨렸다. 가축과 식량도 빼앗았다.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 식량을 공수하지 못하도록 이동도 제한했다. 해외 원조 또한 틀어막았다. 독일 출신 한 의원은 "당시 10세의 소년은 나무껍질, 개구리, 벌레 등을 먹으며 버텼고, 굶주림으로 사망한 엄마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있다"는 참상을 의회에서 발표했다.
유럽의회는 대참사 발생 90년 뒤에야 홀로도모르를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의회는 "구소련이 정보를 은폐한 탓에 실체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결의안엔 "러시아는 과거 범죄를 사과하고, 홀로도모르 관련 기록을 공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모든 국가·기구들이 우리의 결정을 따르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달 초 독일 의회도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구소련의 만행에 대한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결의안은 홀로도모르 발생 90주년을 계기로 마련됐지만,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유럽의회는 "구소련 미화와 스탈린 숭배가 테러지원국(러시아)을 탄생시킨 것"이라면서 "러시아는 그때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농장을 훼손하고, 농작물 수확을 방해하고, 수출을 막는 것이 홀로도모르를 야기한 90년 전 정책과 유사하다고 봤다. 스텔라 키이아키두 EU 보건집행위원은 "러시아가 다시 식량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살인적 추위로 내모는 행위라고 의회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