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성인 인구 2%가 수감…엘살바도르, 갱단과 '위험한 전쟁'

입력
2022.12.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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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비상사태' 선포 후 마구잡이 검거
자의적 체포·고문 등 인권 침해 심각해
부켈레, '치안 유지' 명분으로 철권통치

엘살바도르 정부가 올해 3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8개월 만에 전체 성인 인구(약 437만 명)의 2%가 넘는 10만여 명이 감옥에 갇혔다. 갱단 소탕은 성공적이었지만, 죄 없는 시민까지 체포하고 고문하는 등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지지율은 89%(6월 기준)를 찍었지만, 치안 개선 치적을 독재 강화에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치안은 나아졌지만…일반 시민도 무차별 구금

15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부켈레 정부는 올해 3월 갱단끼리의 충돌로 나흘간 92명이 사망하자 폭력조직 범죄에 따른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공격적인 소탕 작전을 펼쳤다. 당시 엘살바도르에는 살인, 마약 유통 등을 일삼는 악명 높은 갱단 '마라살바투르차(MS)-13', '바리오 18' 등의 조직원이 7만 명에 달했다. "조직원이 너무 많아 선거 운동을 하든 지역 공공사업을 하든 갱단과 엮이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국제위기그룹(ICG)은 평가했다.

정부는 '무관용 소탕'을 선포하고 영장이나 명확한 증거가 없이도 조직원을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올해 10월까지 살인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줄었다. 하지만 경찰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국민을 잡아들이며 피해자가 속출했다. 확실한 근거가 없는데도 '익명의 제보가 있어서', '외모가 갱단 조직원 같아서' 체포된 사례가 허다하다.

수감 중 고문과 학대도 흔했다. 조일라 토레스는 BBC방송에 "남편이 갱단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4월에 체포됐었다"며 "남편은 한 달 동안 감옥에 갇혀 구타당하다가 회사 상사가 보증을 선 후에야 풀려났다"고 말했다.

'갱단 소탕' 만능키로 독재 강화하는 부켈레

인권단체들은 지금과 같은 검거 방식을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올해 3~11월에만 약 5만8,000명이 새로 투옥됐고, 6월 수감자 수는 전체 교도소 정원의 250%를 넘어섰다.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 교도소를 짓고 있지만, 현재 체포 속도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갱단 조직원이 더 늘어날 거란 우려도 있다. 후안 파피에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조사관은 "죄 없는 시민이 감옥에 체포돼 생계 수단이 끊기고, 감옥에서 진짜 갱단원을 만나면 포섭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켈레 대통령은 무차별 소탕 작전을 멈출 생각이 없다. 성과를 내세워 '철권통치'의 길을 닦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그는 갱단 척결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며 의회에 무장 군인을 보냈고, 지난해 9월엔 대법원을 압박해 자신의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새 조항을 통과시켰다. 엘살바도르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달엔 범죄조직 검거 작전을 펼치겠다며 인구 29만 명의 도시 소야팡고를 봉쇄해 시민들의 이동권을 제한했다.

비판이 계속되자 부켈레 대통령은 "(인권단체들은) 사실 엘살바도르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우리가 (범죄 소탕에) 성공해 다른 국가들이 따라 하고 싶은 '힘'의 본보기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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