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당원 투표 결과를 100% 반영해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당대회는 당원의 총의를 묻는 자리이지, 국민 인기를 묻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운을 띄우자, 초·재선 의원들이 적극 호응한 결과다. 당내 일각에서 반발 기류가 이어지고 있지만, 당내 과반을 차지하는 초·재선 의원이 뜻을 모으면서 룰 개정 추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 위원장은 15일 비대위 회의에서 "정당 민주주의에 충실한 전당대회 룰 개정안을 만들겠다"며 "책임당원에게 당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지도부 선출을 맡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정당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밝혔다. 현행 당대표 선출 방식인 '당원투표 70%,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에서 당원투표 비율 상향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일반 여론조사의 필요성에 의구심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놨다. 그는 "유럽 내각제 국가, 미국의 경우 전당대회 의사결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채택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전당대회는 당원 총의를 묻는 자리이지, 국민 인기를 묻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듯, 당의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 발언 직후 국민의힘 초·재선 의원들은 각각 간담회를 갖고 '당원투표 100%' 룰 개정에 뜻을 모았다. 정점식 의원은 재선의원 21명 중 13명이 모인 간담회 직후 취재진과 만나 "재선 의원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원 뜻에 따라 지도부가 구성돼야 한다고 의견 일치를 봤다"며 "100% 당원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장일치로 결정됐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며 "참석 못한 분들 중 일부는 저한테 위임하신 분도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전체 63명 중 27명이 모인 초선의원 간담회에서도 당원 투표 100% 반영으로 의견이 모였다. 일부 의원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규칙을 바꾸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인선 의원은 "극소수였다"고 일축했다. 국민의힘 의원 115명 중 73%(84명)를 차지하는 초·재선 의원들이 뜻을 모으면서 지도부는 룰 개정 동력을 확보했다.
이에 당내 '비윤(비윤석열)계'의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상식선에서는 어떻게 입시제도를 바꿔대도 결국은 대학 갈 사람이 간다. 1등 자르고 5등 대학 보내려고 하는 순간 그게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김웅 의원은 이날 "어떤 장식을 해봐도 그것이 유승민 공포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했고, 허은아 의원은 "국민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당은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룰 개정은 유불리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당원 중 20·30·4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3%에 달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당원 구성이 아니란 것이다. 일반 여론조사 지지율은 높지만 당내 지지가 낮은 유승민 전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룰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발표된 한국리서치 등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지지율은 유 전 의원이 27%로 가장 높았고, 안철수 의원(7%),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겸 기후환경대사(5%)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