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닿는 곳이 제주시 이도1동이다. 이도1동은 몇 년 전부터 해 질 녘이면 제주시 내에서도 관광객들로 가장 붐비는 지역으로 꼽힌다. 붐비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따라가면 마주하는 곳이 제주동문전통시장이다.
17일 오후 5시 동문시장 주차장 입구. 저녁 장사 시간이 시작도 안 됐는데, 이미 시장 주차요원들은 ‘만차’라고 쓰인 입간판을 세우고 있었다. 한발 늦게 도착한 차량 운전자들은 5분 정도 떨어진 동문공설시장 주차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운이 좋은 날이나 가능하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동문공설시장 주차장에도 전국에서 야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온 관광객들의 렌터카로 빈자리를 찾는 게 주말은 물론 평일도 어렵다.
야시장은 매일 저녁 6시 동문시장 8번 게이트 쪽에서 열린다. 대형 스피커에서는 흥을 돋우는 음악들이 가득하고, 젊은 상인들은 '불꽃쇼'로 관광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32개 야시장 점포에서 풍겨오는 고소하고 달콤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흑돼지 철판구이부터 닭꼬치, 전복김밥, 버터문어구이, 전복김치말이삼겹살, 떡갈비 등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다양한 재료들이 주인장들의 현란한 손놀림 속에서 맛깔나게 태어나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에서 왔다는 주하은(25)씨는 "이전에 동문시장에서 야시장의 먹거리와 구경거리가 많아 강렬한 인상을 받아 이번에 친구들과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40대 관광객도 "집 주변에도 동네시장이 있지만, 동문시장처럼 재미있는 곳은 없다"며 "젊은 층에게도 매력 있는 전통시장"이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동문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2018년 3월 야시장 개장이 결정적이다. 다른 전통시장들처럼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던 동문시장 상인들은 "기존 고객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일부 상인들의 반발에도 모험을 택했다. 우려와 달리 야시장 개장은 성공적이었다. 시범운영 기간부터 도민들은 물론 관광객까지 몰렸고, 4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 최고 1만여 명이 찾는 제주 야간 관광의 대표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야시장 개장 초기부터 동문시장에서 버터문어구이를 판매하고 있는 김민서(34)·박장호(49)씨 부부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영업 마감시간인 자정까지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붐볐다"며 "지금은 밤 10시쯤 손님이 줄지만 여전히 매출은 쏠쏠한 편"이라고 말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의 90% 이상은 관광객이고, 문어와 버터의 조합에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는 게 부부의 귀띔이다. 김씨는 "이제 동문시장 야시장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내국인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한 번은 꼭 찾는 필수코스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야시장으로 부흥하고 있지만 동문시장은 원래 제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규모도 최대인 전통시장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제주항 주변 산지천 하류 주변에 일상용품과 식재료 등을 판매하는 노점이 모이면서 처음 시장이 형성됐다. 제주시 원도심 중심부에 자리 잡은 덕에 칠성통상가 및 중앙지하상가와 함께 제주 최고의 상권으로 성장했고, 1990년대 말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교통의 중심지라 동문시장에는 제주도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렸다. 제주 사람들은 동문시장에서 먹거리를 사고, 영화를 보고, 옷도 사고, 목욕탕에도 갔다. 시장이 삶의 일부였던 셈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동문시장도 대형마트와 홈쇼핑 등에 밀려 장기간 침체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야시장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 제주 제1의 전통시장이라는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실제 야시장의 성공은 동문시장 전체를 되살리는 동력이 됐다. 이날도 수산시장과 청과시장에는 선물을 구입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렸다. 제주산 은갈치와 옥돔 등 싱싱하고 저렴한 제주 수산물을 현장에서 직접 골라 택배로 보내거나 포장하려는 손님들로 시장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현장에서 활어를 직접 골라 회를 뜬 뒤, 식당으로 이동해 먹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청과시장도 제주에서 수확한 감귤과 한라봉, 애플망고, 용과 등을 구입하려는 관광객과 도민들의 정겨운 사투리가 한데 섞여 흘러나왔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인기몰이 중인 감귤모자 등 제주를 주제로 한 소품과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기념품 판매점도 동문시장의 인기를 타고 늘어나고 있다. 수 십 년째 동문시장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면서 침체기를 어렵게 버텨 온 식당과 분식점에도 관광객들이 몰려 시장 전체가 '핫플레이스'가 됐다.
야시장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동문시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다른 지역 상인들 방문도 잇따르고 있다. 김원일 동문시장 상인회장은 "최근에는 전국의 전통시장에서 야시장을 벤치마킹하려고 자주 찾아온다"며 "무너져 가는 전통시장을 되살린 야시장이 관광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새로운 먹거리와 구경거리를 계속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