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경기 중지...태극 마크 단 김민경의 악전고투

입력
2022.12.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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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실용사격대회 출전 막전막후


"스톱!" 경기 중 날벼락

처음 출전하는 대회, 처음 받은 총으로 한국 선수 중 가장 먼저 경기를 치렀다. 닷새 동안 넘어야 할 관문은 30개. 40대 여성 코미디언의 국제 실용 사격대회(2022 IPSC 핸드건 월드슛) 도전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지난달 20일 태국 파타야에서 열린 대회 이튿날 김민경(41)은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장애물 위치 설정 오류로 그의 22번째 스테이지 경기가 돌연 중단된 것. 심판의 "스톱"이란 외침에 김민경의 심장도 철렁 내려 앉았다.

현장에선 재경기 통보가 날아왔다. 비교적 좋았던 초반 성적을 다 버리고 그는 다시 총을 쐈다. 산을 넘으니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하, 좌우로 움직이는 과녁 조준은 그에게 도통 요령부득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영문 'KOREA'가 큼지막하게 박힌 셔츠는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14일 서울 가양동 IHQ미디어 사옥에서 마주한 온라인 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의 서현도 PD, 같은 날 전화로 따로 만난 김준기 대한 실용 사격연맹 감독이 들려준 김민경의 국제 대회 출전 뒷얘기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긴장하더라고요. 까다로운 게임 규칙 위반으로 실격당할까봐 스테이지마다 마음을 졸였죠. 마지막 날엔 우리 선수단 바로 앞에 경기를 치른 다른 나라 선수가 실격 판정을 받기도 했거든요."(서 PD)


"울 틈도 없어" 교통사고 난 뒤에 훈련장 찾아

태극 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나간 김민경은 341명 중 333등(프로덕션 디비전 부문)을 했다. 순위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김민경은 경기가 끝나면 숙소로 향해 바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하루에 치러야 할 경기가 여섯 개라 전략 세우고 룰 숙지하느라 울 틈도 없었다"는 게 제작진의 말이다.

대회 일정이 거듭될수록 김민경도 안정을 찾았다. 특정 스테이지에선 281등까지 치고 올라갔다. "김 선수가 기뻐서 울먹이기도 했어요. 의의로 어려운 스테이지에서 잘하더라고요. 이 대회는 마이너스 점수가 없어요. 최하가 0점이죠. 아무리 망쳐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이 경기의 매력인데 김 선수가 그런 면에서 잘 버텨줬어요."(김 감독)

실용 사격은 장애물이 놓인 코스를 따라 이동하면서 목표물을 맞혀야 해 민첩성뿐 아니라 체력도 함께 받쳐줘야 한다. 실용 사격 레벨4 시험을 통과한 뒤 지난 6월 여성부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반년 동안 일주일에 서 너 번씩 경기 하남과 강원 횡성 연습장을 오가며 사격과 체력 훈련을 병행했다. 왼쪽 다리 수술을 받아 발목에 철심이 박힌 그에겐 버거운 과정이었다. 서 PD는 "대회 마지막 날, 김민경이 대회 출전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데 너무 힘들어서 '제작비 물어주고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하지만, 김민경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김 감독에 따르면 김민경은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밤 11시에 훈련장에 왔다.


"이 삶도 나쁘지 않다"던 '운동뚱'의 인생역전

이날 OTT 바바요 등에 처음 공개된 대회 영상에서 김민경은 직접 태극기를 들고 개막식에 참석했다. 73개국 1,300여 명이 참여한 자리였다. 홍콩 선수들은 '운동뚱' 속 김민경 영상을 휴대폰으로 우리 선수단에 보여주며 "이 선수 왔냐"고 묻고, 베트남으로 신혼여행을 간 부부는 김민경을 응원하기 위해 태국까지 찾아왔다. 그의 도전이 해외까지 입소문이 난 결과였다. 김민경은 "진짜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2020년 '운동뚱' 첫 회에서 헬스를 배우다 "(운동하지 않는) 이 삶도 나쁘지 않은데"라고 말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운동을 시작한 그는 갑자기 "태릉이 놓친 인재"란 소리를 듣더니 국가대표가 돼 '근수저'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실용 사격 국가대표 일정을 끝낸 그는 잠시 휴식기를 보낸 뒤 새로운 '운동뚱'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초반에 김민경이 필라테스를 배울 때 '언니 덕에 저도 필라테스를 했어요'란 시청자 반응이 생각나요. 그때만 해도 필라테스는 마른 여성이 주로 하는 운동이란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운동뚱'도 김민경도 중간에 정체기가 있었어요. '끝까지 한 번 가보자'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고요. 누나가 그러더라고요.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요, 하하하"(서 PD)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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