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발행한도 5배 허용? "채권시장 왜곡 악순환만 낳을 듯"

입력
2022.12.14 14:40
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 대표 "한전채 발행 시 시장 쏠림 우려"
"전깃값 인상, 국회 정쟁보다 섬세한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적자에 시달리는 한국전력의 회사채 발행량을 현행 '자본금+적립금' 2배에서 5배, 산업통상자원부 허가를 받으면 최대 6배까지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정부와 여야 모두 즉각 재입법을 시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추가 회사채 발행은 당장 위기를 넘기려는 미봉책에 불과한데, 그렇잖아도 '김진태 레고랜드 사태'로 타격을 입은 국내 채권시장의 유동성 흐름을 더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3일 TBS 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 출연한 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 대표는 " 지금 한전이 발행하는 회사채 규모가 91조 원 정도 되는데, 이것을 5배 정도 늘리면 450조 원이 넘는다"면서 "(한전채의) 금리부담을 5.9% 정도로 계산하는 것 같은데, 한전 같은 초우량기업이 6%에 가까운 금리로 만약 회사채를 발행하겠다고 한다면 다른 회사채 발행하는 기업들로 가야 할 유동성이 한전채권으로 쏠리게 돼 왜곡된 유동성으로 인해 채권시장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은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것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면서, 현재 한전의 적자에 대해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한전이 전력을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형태가 문제다. 곽 대표는 "발전소에서 한국전력이 독점 매입을 한 다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가정용·산업용 공급을 하다 보니 수지 타산이 안 맞는데, 밖에서 볼 때는 이런 적자구조를 유지하면서 안에서 성과급을 나눠 갖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느냐는 시선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미식 저소득층 에너지 수급 지원 본받을 만"

한편 정치적 입장에 따라 문제 인식과 해법이 달라지는 측면도 있다. '탈원전 폐기'를 정책 목표로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원전 비중이 줄어서 한전 적자가 커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제적으로 연료비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물가를 의식해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한 정부와 한전의 잘못을 지적한다. 최근 민주당 쪽 의뢰를 받은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선 원전 이용률이나 비중은 한전 적자와 부관하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곽 대표는 이런 논의에 대해 "정부나 또는 여당, 야당이 서민경제라는 이름을 가지고 전기요금이 내 탓이다, 네 탓이다 하는 것은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관되고 안정적인 가격 시스템을 마련하기엔 부족한 논의"라고 비판하면서 "조금 더 미시적이고, 구체화되고, 섬세한 정책들을 가지고 국회에서 논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는 미국과 영국 등 유럽 국가처럼 혹한기에는 저소득층에 전기료를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만하다고 밝혔다. 곽 대표는 "전깃값이 오르면 서민이나 독거계층, 최저생계계층에는 문제가 심각해진다"면서 "미국 같은 경우 겨울철에 웨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서민들이 낼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상한제 제도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력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하고 누구나 의존 가능해야 한다"면서 "정의롭고 합리적인 가격을 산정하면 수급체계가 시장가격에 어느 정도 맞춰질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