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류학과 비교문학의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역사적 격동을 소설로 묘사해 온 인도 출신 작가 아미타브 고시가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논픽션을 새로 내놨다. 지난해 국내에도 소개된 전작 '대혼란의 시대'(2016)에서 과학과 사회학이 아닌 예술과 문학의 차원에서 기후변화를 조망하는 통찰력을 보여 줬던 고시는 신간 '육두구의 저주'에서 기후위기의 근원적 원인을 서구 식민주의에서 찾는다.
기후위기의 배경은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에서 찾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저자는 환경 파괴적 자본주의 체제의 기저에 수백 년 전 이권 추구와 영역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서구 제국주의가 있음을 강조한다. 식민 세력이 토착민의 낙원과 그들의 환경을 파괴하면서 자연을 정복하고 도구화하려는 물신주의가 보편적 가치관으로 부상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책은 162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총독인 얀 피터르스존 쿤의 인도네시아 반다제도(Banda Islands) 주민 학살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17세기 반다제도는 고급 향료 육두구(Nutmeg)의 유일한 생산지였다. 육두구는 요리 용도뿐 아니라 의료적 쓰임으로도 가치가 높았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반다제도 정복을 통해 백인의 역사가 약탈적 세계 지배에 기반한 소수 특권층의 역사임을 보여 준다. 특히 우주 행성의 지구화를 뜻하는 '테라포밍'이라는 용어를 써서, 토착민의 생활 방식을 훼손하는 서구 식민주의의 테라포밍이 전 지구적 기후 교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위기의 해법으로는 지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생기론(生氣論)'적 사고의 회복을 제안한다. 저자는 "지구적 대재앙의 가능성이 점점 더 가까워짐에 따라 (…) 비인간의 목소리를 복원해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