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어른이 될 수 없는 우리 아이··· 하지만 불행하지 않아요"

입력
2022.12.17 12:00
[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발달장애 가족 릴레이 인터뷰<19>
자폐아 준우군을 키우는 유수희씨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071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광역지자체별 발달장애 인프라의 실태를 분석해 인터랙티브와 12건의 기사로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발달장애 가정들의 개별 인터뷰를 매주 토, 일 게재합니다. 생생하고, 아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서울에 사는 유수희(45)씨는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은 후, 일주일간 밖을 나가지 않았다. 자녀의 발달장애 진단은, 보통 암 선고와 같은 스트레스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훌쩍 자라 학교에 다니는 아들 윤준우(9)군과 유씨의 동행은 밝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기자가 모자를 만난 것은 지난 6월 3일. 학교를 마치고 셔틀버스에서 내린 준우가 밝은 표정으로 엄마에게 와락 안겼다. 모자는 맞잡은 손을 마구 흔들면서 동네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준우군은 유씨를 따라 평소 좋아하는 라면, 과자, 음료수 캔을 골라 잡으며 기뻐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준우군이 구김살 없이 자라기까지, 어머니인 유씨의 노력이 수없이 필요했다. 준우군의 특징을 틈틈이 정리해둔 PDF 파일이 대표적이다. 유씨는 "우리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없다 보니 준우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대신 적어뒀다"며 "활동지원사나 선생님이 바뀌면 공유해드리곤 한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어느 시점부터 초월하면 우리도 똑같은 부모들"이라며 "사회에서 조금만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봐주고 (우리가) 더 편안하게 외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냥 내성적인 아이이길 바랐던 마음

유씨에게 준우의 자폐를 언제 알게 됐는지 물었다.

"준우를 20개월쯤부터 일찍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감이 오더라고요. 일단 걸음마가 6개월 정도 늦었고요. 아이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같이 미끄럼틀도 타고 손인사도 하면서 대인 관계라는 게 만들어지잖아요. 그런데 준우는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안방에 휙 들어가버린다든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잡기 놀이를 할 때 혼자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다든지, 손을 잡으면 뿌리치고 도망간다든지, 사회성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두 돌 지날 때쯤 발달장애 검사를 진행하고 바로 알았어요. 더 일찍 진단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자폐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천천히 (검사)받은 거죠."

사실 돌까지 준우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래서 유씨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12개월 초반까지는 정상 발달을 했어요. 돌이 지나면서는 '안 돼' '아니야' 이런 의사 표현도 했고요. 시기가 좀 늦었지만 걷기도 했고, 엄마와의 애착 관계는 잘 형성돼 있으니까... 그저 내성적인 아이이길 바랐어요."

진단받고 인생이 싫었지만···

준우가 자폐 진단을 받자, 그 절망감은 말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주일은 집 밖에 안 나갔어요. 너무 절망적이고 인생이 싫어서요. 어디서 말하길, 암 선고받을 때랑 스트레스 수준이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장애를 가진 아이를 평생 키워야 하다니 불쌍하다, 했던 게 내 인생이 된 거니까요. 자식이 어릴수록 또래랑 비교를 하게 되잖아요. 또래보다 빠르면 천재인 것만 같아 기쁘고 또래보다 조금만 늦어도 걱정이 되는데, 우리 아이는 평생 어른이 될 수 없다니. 그 절망감으로는 아무 데도 나가기 싫더라고요."

하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많은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가 그렇듯,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은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다.


"7, 8세 이전에 뇌가 다 발달하는데 그때 말을 못 배우면 평생 말을 못 할 수도 있다더라고요. 그래서 장애 진단받은 직후부터 치료실을 정말 열심히 다녔죠. 응용행동분석(ABA) 조기 교육받으려고 강남까지 오가기도 하고요. 시간당 4만, 5만 원짜리 치료를 주 2, 3번씩 받았는데 치료비 전액을 이것저것 다 하면 월 100만 원은 훌쩍 넘게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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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뺑이' 치료에 지친 아이, 뛰어놀 수 있게

그러나 발달재활치료는 또 다른 좌절과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해도 말을 잘 못하니까 좌절감이 들었어요. 사실 발달검사를 할 때마다 절망에 빠지더라고요. 나는 몇 년을 매진했는데 갈 때마다 몇 개월 수준밖에 나아지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결정적으로, 어느 날 문득 준우 신발이 하나도 닳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어요. 놀이터에서 뛰어놀 시간에 치료하러 돌아다니기만 했던 거죠.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 하기도 힘든 뺑뺑이 수업을 1, 2세에게 강요하는 게 맞을까. 차라리 그 돈으로 캠핑도 다니고 여행도 가고 뛰어놀게 해주는 게 더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러면서 준우가 안쓰러워지더라고요."

이제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하고, 아이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많이 내려놨어요. 우선은 어린이집을 7년 다녔는데도 여전히 사람 많은 곳에서의 소음을 힘들어하길래, 불안을 낮춰주고 싶어서 특수학교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게 하기보다는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게 아이 정서에도 좋을 것 같아서 언어·인지치료, 체육치료, 찰흙·음악 치료 정도만 하고 있어요."

개구쟁이 어린 아이가 있는 평범한 가정들이 그렇듯, 캠핑도 자주 간다. "치료실 갈 돈으로 한 달에 한 번씩은 주말에 캠핑장에 가요. 준우가 캠핑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물론 주위의 시선이 없지는 않아요. 밤에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지적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시선에 위축되어선 안 된다. "이런 시선에도 익숙해져야지, 안 그러면 저희만 고립돼서 더 힘들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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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들은 산 밑, 후미진 곳에 지어진다

너무나 부족한 특수학교는 수많은 발달장애 가정의 고민거리다. 유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단지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특수교육지원센터 등에 물어서 정원이 남아 있는 학교를 엄마들이 찾아야 해요. 원래 살던 곳은 교실이 더 없어서 특수학급 추가 개설이 안 된다더라고요. 특수교육지원센터에 하소연해도 '뾰족한 수가 없고 결원이 생기면 넣어주겠다'고 했고요. 그런데 사실 결원이 생기기는 어려워요. 일반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다시 특수학교로 전환하고 싶어 하는 일은 있어도, 일반학교가 좋다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요."

특수학교는 대부분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고, 등하교 과정도 만만치 않다.

"교육기관이 많이 부족해요. 그나마 있는 특수학교들도 도심이 아니라 아파트도 없는 외곽, 산 밑, 후미진 곳에 지어져 있으니까요."

학교에 제때 가려면 아이가 아침잠도 제대로 못 잔다. "특수학교 셔틀버스가 있지만 오전 7시 45분에 버스를 타야 하더라고요. 사실 학교까지 차로 15분 거리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셔틀버스는 이곳저곳 돌아야 하니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죠. 탑승 시간이 오전 8시만 돼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오전 7시에는 깨워야 한다니 도저히 안 되겠어서 자차로 등교시키겠다고 했어요. 아침에 아이가 푹 자야 컨디션도 좋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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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동에 대한 인식 부족한 일반학교

특수학교 진학은 도움이 됐을까. "아이가 문제행동을 했을 때 제재하는 방식만 봐도 일반학교보다 낫죠. 일반학교에서는 장애 아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선생님일 경우 '조용히 해' '시끄러워' 이런 식으로 얘기하시거든요. 반면 특수학교는 문제행동을 탓하기보다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서 발산하도록 도우니까 준우가 나쁜 감정에서 빠져나오기도 쉬워요."

특수학교에서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졌지만, 그래도 지역사회와 어울리지 못하는 데 대한 불안감은 있다. "일반학교에서는 준우도 자기가 친구들과 다르고 학습에 뒤처진다는 걸 알아요. 특수학교에서는 비슷한 친구들이 많으니까 자존감이 높아져요. 물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게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불안함도 공존해요. 방과후에 태권도・합기도・요리까지 듣게 하는 집도 많은데 저는 따로 시키지 않거든요. 그래도 아이가 이 일상을 더 편안해하는 것 같아요."



개별 필요 감안하지 않는 획일적 지원

준우는 하교 후부터 몇 시간, 주 5일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다. 활동지원사가 와서 준우를 돌보는데, 유씨는 자신에겐 교육비 지원이 더 절실하다고 말한다.

"발달장애인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성인에게는 돌봄이 필요하지만 영유아나 학령기 아이에게는 교육이 더 절실하죠. 저 같은 경우엔 어차피 제가 아이를 계속 케어하기 때문에 돌봄 시간은 더 필요 없어요. 차라리 그 비용을 교육・치료비에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구분 없이 '돌봄 150시간(월)' 이런 식으로 지원 내용이 획일화돼 있어요. 중증 장애인이라고 해서 교육 수가(바우처 지원 액수)가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돌봄 시간(활동지원서비스 시간)만 추가되고요.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들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제도가 더 세분화됐을 텐데 아쉽죠."

그렇다고 해도, 무쇠 부모가 아닌 한 언제든 돌봄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는 있어야 한다. "며칠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지니 주저됐어요. 아이를 돌본 적이 없는 지인에게 부탁하기도 어렵고요. 결국 센터의 지원을 받아 딱 하루만 입원했어요. 이러니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상을 당하지도 말아야 해요. 준우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삼일장 치르는 내내 데리고 다녔거든요."

아이가 커가면, 누가 활동지원사를 해줄까

유씨는 다른 가정에 비해 현재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필요가 덜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금 선생님도 3년간 한 번도 안 바꿨는데 교체를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달 동안 새로운 분이 구해지지 않아서 그대로 유지 중인 거거든요."

앞으로는 더 걱정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가 귀여운 수준이니까 구해져요. 덩치가 커졌을 때가 걱정이죠. 활동지원사 시간당 수당이 1만 원이 조금 넘는데, 남자 화장실까지 데려다주는 수고를 더하면서 굳이 힘든 아이를 담당하려 하실까요? 경증 장애인같이 통제할 수 있는 아이들을 맡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언제나 돌봄에 매달려야 하는 삶, 맞벌이는 꿈도 꿀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 때부터 발달장애인 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 봉사를 다녔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복지관에서 미술 치료 보조로 일하고 공부도 겸하고 있어요. 간혹 지인의 아동복 매장에서 일을 돕기도 하고요. 준우가 학교 간 사이 잠깐씩 하는 게 전부다 보니 많은 돈을 벌어 저축하지는 못해요."

그리곤 덧붙였다. "아이가 더 커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긴 하죠." 많이 내려놓고 준우와 함께하며 즐기자는 마음가짐의 유씨에게도 미래는 불안이다.

발달장애인 가정 고립되지 않기를

이 때문에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누구보다 필요한 이들이 발달장애인 부모다. 유씨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같은 아픔을 겪는 부모들과 함께 나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우리 아이의 문제행동을 이해 못 하더라도 발달장애인 부모들끼리는 '너는 양반이야' 하면서 서로의 힘든 점을 공유하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우리도 다른 집 엄마들처럼 아이 학교 보내고 차 한 잔 마시고 영화도 보면서 육아에 대해 얘기하면서 끈끈해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지역적 네트워크도 없이 고립되고 집에서 혼자 아파하는 부모님들 보면 안타깝죠."

그리고 결국엔 사랑스러운 자녀를 키우는 하나의 가정, 보통의 가정과 다르지 않음을 유씨는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고 불행하지만은 않아요. '불쌍해' '안됐어' 그런 고정관념이 있는데,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어느 시점부터 초월하면 우리도 똑같은 부모들이에요. 사회에서 조금만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봐주면 저희에게 훨씬 좋아요. 우리가 덜 미안해하고, 더 편안하게 외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도움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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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현 기자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