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일 국회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별다른 입장 발표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이에 반발하는 야당을 향해 "민생 앞에 여야가 없다"며 교착 상태에 빠진 내년도 예산안 통과를 재차 호소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을 감액해 단독 수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맞섰다. 연말 정국이 이 장관 거취와 예산안을 놓고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오전 국회에서 정부로 이 장관 해임건의문이 통지된 것으로 안다”며 “해임 문제는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 판단할 문제라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지만 명시적으로는 ‘거부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이 부대변인은 “국가의 법적책임 범위가 정해지고 명확해져야만 유가족에 대한 국가 배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면서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최대의 배려이자 보호”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이 '에둘러' 거부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는 건 이 장관 해임을 요구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와 여론을 의식해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까지 아무도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한 점 의혹이 없다고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진상 규명을 다해 충분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 장관 해임건의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원래부터 확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영하듯 전날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직후 후속대응을 위해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당사자인 이 장관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강력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법과 원칙을 문제 삼았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화물연대만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를 초래한 고위공직자들에 대해서도 일관된 법적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민생 앞에 여야가 따로 없는 만큼 초당적 협력과 조속한 처리를 해 달라”며 법인세법 개정안과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 처리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한국전력법 개정안에 대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의 유동성을 확보해 국민의 전기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15일까지 국민의힘과 내년도 예산안을 합의하지 못할 경우 단독 수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