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윤활유' 광고에 첫 시정명령 예정···정부 "그린워싱 판단"

입력
2022.12.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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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SK루브리컨츠에 시정명령 예정
SK에너지·GS칼텍스·포스코도 행정지도
기업이미지 광고는 시정명령 제외 논란
정부, ‘그린워싱 예방 가이드’ 마련 계획

[그린워싱탐정]<13·끝>그린워싱 제재 시작

편집자주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1년간 연재했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회이지만, 앞으로도 그린워싱 논란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겠습니다.

정부가 ‘탄소중립 석유’ 등 용어를 사용한 에너지·철강 기업의 광고를 그린워싱으로 판단하고 처음으로 제재에 나섰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되, 배출이 불가피한 탄소는 모두 흡수·제거해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원유 채굴·정제·공급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 중 일부에 대해서만 탄소배출권을 구입해 상쇄해놓고, 모두 상쇄한 것처럼 '탄소중립'이라는 표현을 썼다.

근본적으로 석유나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판매량만큼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온실가스를 상쇄한다는 기업들의 주장은 실제 탄소중립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그린워싱 탐정 3회(3월 9일자)에서 이 문제를 집중 다뤘었다. 이번 조치에는 당시 다뤘던 광고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13일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환경부는 ‘탄소중립 윤활유’를 판매한다고 광고한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에 광고를 수정하라는 시정명령을 금명간 내릴 예정이다. 한국일보의 문의에 환경부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시정명령 내용을 통지하고 처분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당 광고가 탄소중립 효과를 과장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환경적 효과를 오인하게 한다는 이유다. 이는 정부가 탄소중립 화석연료 광고를 행정 제재한 첫 사례다.

환경부는 또 탄소중립 휘발유와 경유를 판매한다고 광고한 SK에너지와 탄소중립 원유 도입을 광고한 GS칼텍스, 탄소중립 LNG 도입을 광고한 포스코에도 광고를 시정하라고 행정지도(권고)를 할 예정이다.

배출권 일부 사놓고, '탄소중립 윤활유' 광고

기업들이 말하는 ‘탄소중립 화석연료’는 화석연료를 사용한 만큼 나무를 심어 탄소를 흡수하면 실질적인 배출량이 0이 된다는 논리다. 직접 나무를 심을 수도 있지만, 기업들은 주로 해외에 조성된 자발적 탄소배출권 인증기관의 배출권을 구매한다. 다른 기업이나 기관이 친환경 사업을 하거나 온실가스를 감축한 대가로 발급받은 배출권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SK루브리컨츠는 지난 9월 '탄소중립 윤활유' 판매를 시작하면서 ‘자발적 탄소배출권 인증기관 베라(Verra)사가 인증한 자연 기반의 고품질 탄소배출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우루과이 과나레 지역의 목초지를 숲으로 다시 조성하는 재조림 프로젝트에 바탕을 둔 배출권이라는 설명이다.

SK루브리컨츠는 제품 예상판매량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115톤으로 보고 이에 상응하는 배출권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SK루브리컨츠가 추정한 탄소배출량은 스코프(Scope)3만을 고려한 양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제품 생산과 회사 운영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한 양(Scope1·2) 및 공급망에서 발생한 배출량(Scope3)으로 나뉜다.

결국 윤활유의 소비자가 차량을 운전하면서 배출했거나, 제품 중간유통업체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대해서만 탄소배출권을 구매했다는 얘기다. 원유 형성과 채굴, 정제와 운송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빠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에서 천명한 탄소중립은 스코프 1·2에 대한 것으로 스코프 3 만을 갖고 탄소중립이라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며 행정처분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의 기후대응 정책은 물론, 기업들의 탄소중립 선언에는 기본적으로 스코프1·2가 포함된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넘어서 스코프3까지 탄소중립 대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SK에너지는 올해 2~3월 판매한 휘발유·경유 및 9월 판매한 항공유 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베라사의 탄소배출권을 구매했다. 휘발유·경유에 대해서는 4,299톤, 항공유에 대해서는 3,872톤 상당이다.

그러나 SK에너지 역시 스코프3에 해당하는 양만 구매하고 탄소중립이라고 표현해 과장 광고를 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SK에너지의 제품은 환경부가 조사를 시작한 9월 말 이전에 판매가 중단돼 행정처분을 면했다.



기업 이미지 광고는 시정명령 안 된다?

탄소중립 원유와 LNG 도입에 대해 홍보한 GS칼텍스와 포스코에도 시정명령 대신 행정지도가 이뤄질 예정이다. 환경성을 과장하긴 했지만 제품에 대한 광고가 아닌 경영활동 홍보이기 때문에 행정처분이 어렵다는 이유다. 행정지도는 자율시정 권고라 강제력이 있는 시정명령과 다르다.

GS칼텍스는 지난해 6월 스웨덴 정유기업 룬딘사로부터 탄소중립 원유 200만 배럴을 구입했다고 광고했다. 포스코 역시 지난해 3월 독일기업 RWE로부터 탄소중립 액화천연가스(LNG) 6만6,783톤을 수입했다고 광고했다. 두 기업이 도입한 화석연료는 이미 판매자가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고 ‘탄소중립’이라는 이유로 판매한 경우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에 대해서도 “생산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기업 전체의 탄소중립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와 포스코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다소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기업 광고는 제품보다는 경영전략 및 기업 이미지 중심 홍보가 트렌드인데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현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상 ‘부당한 표시·광고행위 금지’ 조항에는 ‘소비자를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우려’라고 돼 있는데, 정부는 이를 이유로 제품에 대한 그린워싱만을 제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법에 명시된 소비자를 제품 구매자로 한정하는 대신 시장의 잠재적 구매자로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업 그린워싱 광고 제재 시작되나

환경부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그린워싱 예방 가이드’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달 중 광고 및 온실가스 전문가·시민단체·산업계 관계자 20여 명을 모아 공동 작업반이 구성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에는 ▲탄소중립 등 잘못 사용되기 쉬운 친환경 용어를 선별해 표시·광고상 허용 가능한 범위 설정 ▲용어 적정 사용을 위한 자가진단표, 나아가 ▲그린워싱 예방을 위해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정보공개 범위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외부감축 등을 탄소중립으로 홍보할 경우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성준 의원은 "기업들의 무분별하고 광범위한 ‘탄소중립’ 표시·광고에 환경부가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제품뿐만 아니라 기업활동에 대한 그린워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기준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