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과학 개념에 ‘윤리적 가치판단’을 투영한다. 옳고ㆍ그름의 잣대를 적용한다. 흔히 민주주의는 좋은 것, 불평등은 나쁜 것, 진보 정책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 개념과 윤리적 가치판단이 결합된 사람일수록 저자의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 제목은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민주주의, 불평등, 진보의 관계는 명료하지 않다. ‘모순적 결합’은 매우 흔하다. 독재 정부 때 불평등이 줄고, 경제발전에 성공하기도 한다. 민주화 이후 불평등이 늘어나기도 한다. 한국 경제사에서 불평등이 늘어나는 시기는 경제성장, 소득상승, 수출 대박 시기와 겹친다. 세계사로 확대하면, 전쟁, 대규모 전염병, 공산주의 혁명이 불평등을 줄였다.
민주주의, 불평등, 진보 정책은 별개의 논리로 작동한다. 우리는 ‘윤리적 가치판단’에서 사회과학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간 잘못 알고 있던 사례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불평등 확대를 논거로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를 비판한 경우다. 둘째, 1930년대 이후 미국의 불평등 축소를 ‘진보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불평등 확대를 논거로 한국 민주주의 실패를 비판한 경우다.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다. 먼저 책에 나온 최 교수의 주장을 살펴보자.
“민주주의를 원리로 하는 정치는 시장의 불평등 효과를 제어하는 평등화의 기제로 작용한다. (..) 반면에,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기득구조와 시장체제의 불평등 구조를 제어할 국가의 민주적 역할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기존의 규제장치를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버렸다. (..)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민주화 이후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증대되었다. 최상위 20%와 최하위 20% 사이의 소득격차 비율은 1996년 4.74배에서 (..) 2008년 8.41배로 늘었다.” (27, 28쪽)
민주화 운동을 했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집권기는 불평등 확대기와 대체로 겹친다. 최 교수는 불평등 확대를 논거로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를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 기간 내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진보성향 지식인, 진보성향 언론, 진보정당 활동가들에게 반향이 컸다. ‘참여정부 비판’의 논거로도 연결됐다. 이는 더 길게는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채택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최장집 교수의 비판 및 논거는 타당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적절하다. 왜 그런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집권기에 불평등이 증가한 것 자체는 팩트다. 그러나, 이 시기에 불평등이 증대된 원인은 내부 원인보다 ‘외부 원인’이 더 결정적이었다. ‘국내적’ 정책요인보다 ‘중국 교역’(세계화) 요인이 가장 컸다.
한국의 임금 불평등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증가하지 않는다. 1994년 이후부터 증가한다. 그 이유는 1992년 8월에 체결된 한ㆍ중 수교 때문이다. 1994년 이후 불평등 증가는 중국과의 가성비 경쟁에서 밀려서 저숙련ㆍ노동집약적ㆍ수출ㆍ제조업 분야가 초토화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산업이 부산의 신발산업과 대구의 섬유산업이었다.
노무현 정부 집권기와 겹치는, 2002년 이후 한국의 불평등 증가 역시 중국 요인이 가장 컸다. 중국은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다. 이후 중국은 10%가 넘는 연평균 경제성장률, 25%에 달하는 연평균 수출증가율을 달성한다. 이 시기에 한국의 대중국 수출증가율은 무려 30%였다.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이 증가한 것은 팩트다. 그러나 불평등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중국 수출 대박’ 때문이었다. 한국의 소득상층 20%는 수출-제조업-대기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포항제철 노동자들이다. 중국 수출 대박으로 이들의 소득도 대박을 쳤다.
최 교수의 문제의식을 적용해서, 중국 수출 대박으로 늘어난 불평등을 ‘민주적’으로 줄일 방법이 있을까? 없다. 만일, 상층 20%에 대해 소득세를 대폭 인상하면 불평등의 증가폭을 아주 약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의 추세선을 ‘반대로’ 돌릴 수는 없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수출 대박으로 인한 불평등 추세선을 꺾으려면, 훨씬 더 과격한 정책을 써야만 한다. 예컨대, ‘수출전면 금지법’을 만들거나, 소득상승분을 ‘전액 몰수’해야 한다. 그런 정책은 실현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다.
두 번째, 1930년대 이후 미국 불평등 축소를 ‘진보주의 정책’ 영향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그림1은 토마 피케티 책에 인용된 그래프다. 1930~1960년대까지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축소됐다. 왜 줄었을까? 일부 해석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한 ‘뉴딜 정책’ 효과로 본다. 소득세 대폭인상, 노동조합 활성화, 공공사업의 적극 전개를 원인으로 본다. 한국의 진보성향 학자들에게서 이러한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불평등 축소=뉴딜=진보정책의 등식이 성립한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미국의 소득불평등 축소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봐야 한다.
불평등 축소는 진보정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발상은 ‘군부독재’ 시기에 한국의 불평등 축소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림2는 1964~1995년 기간에 국세청 납부자 중 상층 10%의 임금 비중 추이다. X축은 연도다. Y축은 위로 올라갈수록 불평등이 큰 경우다. 그림2를 보면, 1978~1995년 기간에 불평등이 꾸준히 축소됐다. 이 시기의 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군부 출신’ 독재자였다. 노태우는 1987년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기에 약간 다른 경우이긴 하다. 1978~1995년 한국의 불평등 축소는 ‘진보 정책’을 집행해서가 아니다. 노동운동은 빨갱이로 몰리며 탄압당했다. 노동3권은 사실상 금지됐다.
이 시기에는 왜 불평등이 줄었을까?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됐다. ①중간재의 국산화 ②노동3권 탄압이다. 중간재 국산화는 중화학공업 분야의 대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1970년대 초반에 본격 추진된다. 이때 만들어진 법이 1975년에 제정된 ‘계열화촉진법’이다. 노동3권 탄압도 불평등 축소로 작용한다. 수출+제조업+대기업은 내수+서비스업+중기업보다 생산성과 경영성과가 좋은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금지했기에 ‘상층’에 속하는 수출+제조업+대기업 노동자들은 생산성만큼 임금인상을 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하후상박(下厚上薄) 효과가 작동한다. ‘독재적’ 방법에 의한 불평등 축소였다.
미국의 경우, 3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불평등 축소로 작용한다. ①대공황과 전쟁 ②중간재의 대량생산 ③진보적 뉴딜 정책이다. 그림2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유럽’의 소득불평등 추이다. 유럽은 뉴딜 정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평등 축소 시점이 미국과 같다. 바로 1929년 대공황 직후다. 유럽과 미국이 공통으로 겪은 것은 대공황, 전쟁,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쁘지만, 부자들에게도 큰 타격을 줬다.
‘중간재의 대량생산’도 불평등 축소로 작용했다. 미국 경제사에서 1930~1960년대는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대량소비가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던 시기다. 중간재의 대량생산이 불평등 축소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 중간재의 대량생산 → 중기업의 대규모 확대 → 중간소득층의 규모 확대 → 불평등 축소가 작동한다. ‘중간재의 대량생산’이 가장 중요했다. 미국 불평등 축소와 한국 불평등 축소의 공통점이다. 미국은 진보정책이 결합된 불평등 축소였고, 한국은 독재적 방법이 결합된 불평등 축소였다.
경제학에서 불평등은 하층과 상층의 격차다. ‘결괏값’이다. 원인을 묻지 않는다. 우리는 좋은 원인과 나쁜 원인을 인수분해 해야 한다. 불평등 자체만 봐선 안 된다. ‘원인’을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총체성과 균형감각이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