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 싶으면 나가서 걸어라...성인 ADHD인의 운동법

입력
2022.12.10 09:00
15면
<22>  ‘본능 거부’가 운동의 시작이다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건강한 줄 안다. ‘내일은 체력왕’이라는 운동 에세이를 썼고 풋살을 하며 가끔 농구도 하고 등산도 하고 모자를 거꾸로 쓰고 종종 운동복을 입고 다니니까 대충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옆에 앉은 동료는 내가 대체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다. “좀 안 아프시면 안 돼요?” 나는 웃었다. 힘없이 조금 처진 눈으로.

불과 한 달 전 풋살 리그에 나가 최다 득점자 상을 탔던 나는 무려 한 달 동안 한의원과 통증의학과를 오가며 각종 통증 치료를 받았고, 오후 3시경이 되면 무너지는 어깨와 함께 인생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에 시달렸다. 통증이 너무 심할 땐 세상에 오직 통증과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곳엔 일도 가족도 친구도 들어올 자리가 없다. 책도 영화도 드라마도 들어오지 못한다. 통증만이 검은 입을 벌리고 나를 야금야금 집어삼킨다. 그 시커먼 아가리에 머리까지 잡아먹힌 날엔 ‘이렇게 살아서 뭐 하지’란 생각까지 든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겨우 잠들어도 너무 쉽게 깨어버리는 날들엔 몸도 정신도 조각이 난다. 아침이 되면 몸과 정신 조각 모음 30% 진행 중인 상태로 출근한다. 조각 모음은 실패한다.

일단 체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나도 안다. 모두가 아는 건 나도 웬만하면 안다. 문제는 오랫동안 알고만 있을 뿐이라는 거다. 내가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을 쫓아다니는 내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공이라는 형상을 한 도파민을 쫓아다니는 모양새를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

나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는 성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이다. 어찌 된 일인지 내 전두엽에는 뭔가 이상이 생겨서 보통 사람만큼의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고 한다. 도파민 없이 사는 데 적응하면 좋으련만 그래도 살아있는지라 기쁨과 즐거움과 자극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며 도파민을 갈구한다. 그렇게 무리를 하다가 나가떨어지고 좌절하고 스스로 실망하며 도파민은 더욱더 가뭄이 나고… 반복의 연속이다. ADHD 환자는 즉각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니까 장기적 목표 설정 같은 것들, 이를테면 ‘꾸준한 운동을 통한 기초체력 및 근력 강화’에는 매우 취약한 타입이라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허리가 부러졌냐 왜 맨날 누워있냐’ 혹은 ‘그렇게 게을러터져서 뭐가 될 거냐’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러셀 램지와 앤서니 로스테인이 쓴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 같은 책을 읽으면서 이 지독한 미궁에서 헤어나갈 해법을 도모해 보곤 한다.

이 책은 대부분의 성인 ADHD 환자들이 목표(예를 들면 운동)를 달성하거나 피할 수 없는 과제를 헤쳐 나갈 때 최선을 다하려고 함에도 의도치 않은 동기 결핍에 빠지게 된다고 알려준다. 이들이 정의하는 ‘동기’는 즉각적인 보상이나 결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나 과제를 완수하고자 하는 강렬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능력(그리고 종종 단기간 따르는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는 것)으로, 당장 할 이유가 없어도 해야 할 일을 하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ADHD 환자들은 이성적으로는 운동이나 시험공부가 유익한 것은 알지만 지루함 같은 부정적 감정 혹은 일에 대한 감정의 결핍으로 인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일을 미룰 때 일의 시작과 연관된 감정적인 불편함은 과장하고 긍정적 감정은 축소한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그렇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 시작하는 게 힘들었고 어찌어찌 시작해도 이어지는 과정이 엄청나게 지루했다. 사람이 어떻게 지 좋은 일만 하며 사냐고들 하지만 반복적이고 지루한 것에 굉장히 취약한 나는 삶이 꼭 이런 식이어야 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매 순간 행복할 수는 없어도 좀 덜 불행할 순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책의 두 저자는 의욕 (필요한 만큼) 만들기라는 지침을 내려준다. 걸핏하면 인생까지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해야 할 과제를 구체적이고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정의하라고 한다. 행동 시작하기의 첫걸음은 과제의 가장 작은 첫 단계를 정하는 것. 시작을 방해하는 부정적 감정을 알아내고 내가 어떤 식으로 부정적 감정을 확대하고 처리하며 불편함을 참아내고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능력들을 축소 해석하는지 알아내는 게 그다음 일이다. 그 후 그것에 대한 내 감정들을 분류하고 받아들이라고 한다. 시작을 위해서 그 기분이 아니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행동 단계만 기억하고, 일단 시작하면 더는 미루는 것이 아니게 되니 기분이 좋아질 것이란 조언이다.

그럴싸하다. 내가 내심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제, ‘걷기’에 대입해 본다. 걸어서 7분 거리인 마트에 가는 데도 큰 결심이 필요한 나는 걷기를 좀 가볍게 만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부터 난관이다. 느닷없이 걷기를 위한 나의 가장 작은 첫 단계에 친구를 끌어들이기로 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걷기가 조금 가벼워지니까. 아주 미미한 찬 바람에도 호들갑을 떨어대는 내가 2만 보를 걸은 날을 돌이켜보면 그 옆에는 친구가 있었다. 이 역시 도파민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적인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걷기를 좋아하는 친구 옆에 나를 가져다 두면 나는 더 이상 걷기를 미루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걷기의 즐거움에 조금씩 빠져들다 보면 어느 날 혼자서도 운동화를 신고 척척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생각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한바탕 걷고 나면 불필요한 생각이 날아가고 명료해지는 게 좋아요. 매일 한 시간씩 걸으면서 체력도 체력이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더 큰 것 같아요. 조금 먼 거리도 귀찮아하지 않고 쉽게 걸을 수 있게 됐고 아주 정말 미세하게 뭉그적거리는 게 개선됐어요. 걷는 거에는 진짜 반전이 없어요. 사실 너무 무료하고 반복적인 행위죠. 그런데 다리가 아프고 몸에 열이 오르는 순간부터 생각이 환기되고 내가 생각을 잠깐 멈췄다는 걸 깨닫고 상쾌해지죠. 그것도 엄청나게 드라마틱 하지는 않아요.” 약 두 달 동안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한 시간씩 걷기를 실천 중인 문상훈씨는 다소 덤덤하게 걷기의 매력을 전했다. ‘아주 정말 미세하게 뭉그적거리는 게 개선됐다’는 그의 말이 아주 정말 미세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어느 날,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처럼 방바닥에 붙어 있었어요. 기분이 더러워서 벗어나고 싶은데 몸이 잘 안 움직여졌는데 ‘산에 가보자!’고 결심을 하고 그 중력에서 벗어났어요. 그래도 몸과 마음은 무거웠죠. 그런데 산 중턱 정도에 가니 상태가 조금 변화된 게 느껴졌어요. 정상에 오르니 ‘그래 한번 해 보자’라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내려올 때는 거의 뛰어서 내려왔죠. 그때 결심했어요. 고민은 움직이면서 하자고. 여하튼 생각을 정리하기엔 걷기가 최고예요. 나이 50이 넘으니 끄덕하면 손발이 차가워지는데 20분이든 1시간이든 걷고 나면 틀림없이 몸에 열이 나요. 추워서 정말 걷고 싶지 않아도, 걷고 나면 더워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 극기가 돼요. 겨울철 걷기는 죽어도 나가기 귀찮다는 단점과 걷고 나면 생명력으로 가득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죠.” 수년째 매일같이 걷는 강윤희 씨의 걷기 예찬. 그의 ‘고민은 움직이면서 하자’는 말이 내 마음을 두 걸음 정도 움직였다.

‘네 직감을 믿지 말라’는 뜻의 영문 ‘돈트 트러스트 유어 것’(Don’t trust your gut)이 원제인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구글 데이터 과학자 출신 저자 세스 스티븐스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을 증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에너지가 많이 들어갈 것 같은 활동을 피하려는 본능을 피하는 것이다. 어떤 활동을 하려는 생각만 해도 입에서 “으아” 소리가 나온다면, 그건 당신이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가 아니라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미루기의 천재이자 추위 앞의 절대 약자인 나에게 겨울철 걷기란 “으아” 백 번 감이다. 그러니까 올겨울에는 백 번 걷기로 한다. 친구 옆에서 “으아아아아아아아”.

강소희 작가·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