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일찍 대책을 마련했다면....”
엄마는 인터뷰 내내 자주 말을 잇지 못했다. 2일 하굣길에 술에 취한 남성이 모는 차에 치어 아홉 살 아들을 떠나보낸 그였다. 아이들의 교통안전을 보장하겠다며 정부가 만든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였다.
엄마는 구청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학부모들은 그간 초등학교 바로 앞인데 인도도 없고, 내리막길이라 위험하다며 여러 번 구청 문을 두드렸다. 구청 측 답변은 한결같았다. “주민들이 반대해 인도 설치는 불가능하다.”
변화는 비극이 터진 뒤에야 찾아왔다. 6일 서울 강남구 언북초 인근 카페에서 만난 엄마 이모(43)씨는 “교육청과 구청, 학교 운영위원회가 회의를 하기로 했다”며 “이젠 주민 반대 같은 변명이 안 통할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아들의 허망한 죽음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생각이 없다.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
사고 당일 모자의 일상은 여느 때처럼 평온했다. 아들 A군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면 함께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이씨에게 방과 후 수업 교사가 전화를 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어머니, ○○이 집에 갔나요?”
자초지종을 알아볼 새도 없이 3분 후 경찰에게서 “아이가 크게 다쳤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씨는 A군 여동생 손을 잡고 ‘살아만 있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허사였다. 아들의 육신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하늘은 모자의 마지막 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9년 1개월. A군 머리맡에 붙은 인식표에는 어린 생명이 살다 간 시간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이씨는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온몸이 얼룩졌고, 응급처치를 하느라 옷도 다 찢겨져 있었다”고 비통해했다.
A군은 어린 나이에도 각종 전쟁사를 훤히 꿰고 있는 ‘밀리터리 덕후(마니아)’였다. 그래서 한때 군인을 꿈꿨다. 숫기 없는 친구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거는 배려심 많은 아이이기도 했다. 친구가 보낸 문자에는 ‘○○이의 마음은 엄청나게 넓다’ ‘모르는 걸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등 칭찬만 가득했다.
두 살 터울 여동생에게도 둘도 없는 친구이자 든든한 오빠였다. 두 자녀는 사고가 난 후문으로 매일 손을 꼭 잡고 등ㆍ하교했다. 이씨는 남매의 등교 모습이 담긴 휴대폰 동영상을 보여 줬다.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는 물음에 동생은 “하늘나라”라고 답했다. 부모는 또 눈물을 쏟았다.
이씨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가해자를 반드시 엄벌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특히 경찰이 가해 남성 B씨에게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B씨는 A군을 친 뒤 21m 거리의 자택 주차장으로 갔다가 40초 후 다시 사고 장소로 돌아왔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토대로 도주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B씨는 어린이보호구역 치사(민식이법) 및 위험운전치사 혐의로만 구속됐다. 이씨는 “사고를 인지했기 때문에 현장에 다시 온 것”이라며 “사고 직후 구호 조치도 안 했는데 어떻게 뺑소니가 아니냐”고 분노했다. 뺑소니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으로 민식이법보다 법정 형량이 높다.
전문가들 역시 섣불리 뺑소니 혐의를 내칠 사고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변호사는 “운전한 거리, 돌아온 시간에 상관없이 주차를 위해 이동했다면 현장 이탈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오현 나현경 변호사도 “쓰러진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등 즉시 구호 조치가 없었다면 뺑소니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진실 규명과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 약 4,500장을 모아 8일 경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장례식을 앞둔 새벽 엄마는 하늘의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히 쉬라고, 많은 이들이 기억해 달라고, 아들의 짧은 인생을 편지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