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같은 발달장애인, 신체 멀쩡하니 돌봄 지원 후순위?

입력
2022.12.09 04:30
19면
[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하루 7시간 이상 지원 대상 극히 미미
활동지원 평가, 발달장애에 불리하고
활동지원사 연계 안 되는 경우도 허다

중증 자폐인 윤나영(22·가명)씨의 엄마 이지선(가명)씨는 돌봄에만 메어 있는 여느 발달장애인 부모와 달리, 남편과 10년째 맞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특수교육이나 발달재활 비용이 많이 들고, 나영이 위로 언니도 있다 보니 저도 경제활동을 해야 했어요. 특히 아이 어릴 때 돈이 참 많이 들어서 집 장만도 3년 전에야 겨우 했죠."

지선씨가 일을 다닐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가 있어서다. 딸 나영씨는 주 5일 오전 10시~오후 4시엔 주간활동센터에 다닌다. 센터 방과 후부터 부모의 퇴근 전까지는 '활보쌤'(활동지원사)이 나영씨 곁에 함께한다. 그가 받은 활동지원 시간은 월 210시간(하루 7시간꼴) 남짓으로, 총 15구간인 활동지원 서비스 등급 중 10등급이다.

사실 나영씨네 가족은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올해 6월 기준 활동지원 서비스 1~10등급(하루 7시간 이상 지원)을 받은 경우는 전체 지적 장애인 이용자의 5.07%, 전체 자폐성 장애인 이용자의 2.42%에 불과하다. 하루 10시간 이상은 지적 장애인의 0.8%, 자폐성 장애인의 0.1%에 불과했다.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대상자를 14만 명(올해 13만 2,800여 명)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 체계 내에서 얼마나 많은 발달장애인이 추가로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발달장애인에게 유독 가혹한 활동지원 서비스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활동지원 등급 평가표 살펴보니

팔·다리를 쓸 수 있고, 듣고 볼 수 있다고 해서 '2살', '4살' 아이를 혼자 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지적 수준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은 신체적 장애인에 비해 활동지원 서비스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 소외되기 일쑤다. 현재 등급 평가 체계가 주로 신체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를 신청하면, 국민연금공단의 조사원이 가정을 방문해 등급 부여를 위한 조사를 한다. 1등급은 월 480시간(하루 16시간), 가장 낮은 15등급은 월 60시간(하루 2시간) 이용이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크게 △기능제한 △사회활동 △가구환경 세 개 범주로 나뉜다. 점수(총 596점 만점)에 따라 등급(월 이용시간)과 활동지원사에 대한 가산수당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

가장 배점이 높은 '기능제한'(총 532점)은 △시청각 복합평가·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 등 '일상생활동작'(318점) △전화 사용·대중교통 이용 등 ‘수단적 일상생활동작’(120점) △위험인식 및 대처 등 ‘인지행동특성’(94점)으로 다시 나뉜다.

그러나 종합조사표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장애유형별 특성에 따른 별도 조사표가 없고,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이 경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1등급이 되려면 사지마비에 인지 장애까지 있어야 하는 식이다. 이런 이유로 올해 6월 기준 1등급(하루 16시간 지원)에 해당하는 발달장애인은 '0명'이다. '장애인을 점수로 줄 세워 갈라치기 한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인지 기능 배점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발달·정신장애인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만도 존재한다.

발달장애인 80%, 하루 5시간 이하만 지원받아

실제로 발달장애인들의 활동지원 등급은 후순위에 집중돼 있다.

낮은 등급은 곧 이용 가능한 시간이 적다는 뜻이며, 시간이 적을수록 활동지원사 연계도 훨씬 어려워진다. '시급제 노동자'인 활동지원사 입장에서는 월 이용시간을 넉넉하게 받은 이용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은미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현황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지적 장애인 이용자 79.9%, 자폐성 장애인 이용자 83.6%가 후순위 구간인 12~15등급(하루 5시간 이하 지원)에 몰려 있었다. 지체 장애인은 60.2%, 뇌병변 장애인은 49.7%로 후순위 등급 비율이 덜했다.

종합조사 과정 자체가 부실하고, 전문성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발달장애 부모 A씨는 "조사원이 20~30분 한 번 봐서는 아이를 다 파악하실 수 없다. 조사 항목도 일일이 다 직접 시켜서 확인하는 게 아니라, 보호자 답변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A씨의 자녀는 자해 행동이 있는 중증 자폐(구 1급)임에도, 14등급(월 90시간·하루 3시간)을 받았다. A씨 자녀는 활동지원사 연계가 안 돼 시간을 못 쓰고 있다.

일하려는 활동지원사가 없다

등급을 받았어도, 활동지원사 연계가 안 되면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현 제도하에서는 지원이 절실한 중증 발달장애인일수록 연계가 어려운 역설이 발생한다. 공격적인 행동 등 행동문제가 있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노동강도는 더 높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발달장애인 가정의 1,07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들은 호소 중 하나는 "활동지원 받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지적·뇌병변 중복장애 아들(14)을 둔 박지수(가명·47)씨는 1년 넘도록 활동지원 제공기관 7곳에 문의했지만, 일하려는 활동지원사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엔 활동지원사 교육을 이수한 친척이 아들을 봐주고 있다.

서울의 한 설문조사 응답자는 "최저임금에 가까운 낮은 급여에, 힘든 중증 아이는 굳이 맡으려고 안 하시니 일하시겠다는 분을 구하기도 어렵고, 구하더라도 하루 이틀 하시고 그만두시는 분이 대다수"라며 "아이들 특성상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면 불안도가 높아져서 일상생활에서도 문제가 많이 나오는데,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분이 없어 부모가 오롯이 24시간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신청 후 6개월이 지났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제주도에는 사람이 적어서 활동지원 받으려고 이사도 한다"는 울분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시급 조정하는 '부정수급' 만연

정부와 국회는 가산수당(현재 시간당 2,000원)을 인상할 계획이지만, 발달장애인은 대체로 평가 등급이 낮아 가산수당 혜택에서도 거의 제외돼 있다. 가산수당은 중증 장애인의 연계 활성화를 위해 활동지원사에게 지급되는 추가수당이다. 올해 6월 기준 활동지원을 받는 지적장애인 이용자 5만3,046명 중 607명(1.1%), 자폐성 장애인 이용자 1만9,063명 중 35명(0.1%)만이 가산수당을 적용받았다.

애초 정부가 정한 인건비 수준(올해 활동지원 수가 1만4,805원·기관 수수료 제외 시급 1만1,000원 안팎)이 낮아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다 보니, 이용자와 활동지원사 간의 '급여 조정', 즉 부정수급도 관행처럼 벌어진다.

미취학 자폐 아동을 키우는 전민혜(가명)씨는 "월 100시간 이용이 가능하다고 안내받았지만, 막상 연계가 된 활동지원사가 '애가 중증이라서 힘드니, 시간을 더 달라. 그게 여기 문화'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부당하다는 생각에 기관에 신고했지만, '중증 아동 키우며 깐깐하게 군다'는 소문에 연계만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자포자기한 그는 지금은 시간을 더 쳐주고, 실제로는 월 30~40시간만 서비스를 받는다.

한국일보 설문에서도 "실제 이용시간과 별개로 '받은 활동지원 시간을 다 달라(다 쓴 걸로 해달라)'고 요구하기에 그냥 안 쓰고 있다"는 등의 답변이 많았다.

"민간위탁 청산하고 공공형태로 가야"

활동지원 서비스 개선 방향에 대한 목소리는 다양하다.

우선 발달장애인의 특수성에 따른 활동지원 업무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덕규 전국활동지원사노조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들이 받는 활동지원 시간이 적은 경향이 있는 데다, 현장에서는 업무 방침도 혼란스럽다"면서 "예를 들어 함께 길을 가던 발달장애인 이용자가 갑자기 아이스크림 여러 개를 먹고자 하면, 애 인권적 측면에서 당사자 의사 존중이 우선인지 아니면, 통제자 역할을 해야 할지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정부에 매뉴얼 마련을 요구해왔지만, 진척은 없다.

현실적으로 문제행동 등이 있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부모가 활동지원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 경제적 보조를 해줘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다만 장애인 당사자의 자율성 침해 우려나 부정수급 가능성을 고려할 때 현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반론도 있다.

활동지원사들의 임금 처우 개선·가산수당 인상도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 서비스 연계난'의 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활동지원 수가를 시간당 1만7,000원(올해 1만4,805원), 가산수당을 시간당 5,000원(올해 2,000원)으로 인상하는 예산안이 논의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공공서비스를 정부가 민간에 떠넘긴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열린 ‘장애인 활동 지원사 노동실태 발표 및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활동지원사의 ‘괜찮은 임금, 괜찮은 사회적 대우, 괜찮은 직업적 자부심’은 장애인 돌봄의 품질 향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민간위탁 구조를 청산하고 공영 형태 운영을 적극 고민해야 하며, 임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