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아) 엄마들끼리 그런 농담해요. 저희는 밑에 빌딩 하나씩 뒀다고. 한창 재활치료를 할 땐 아이만 바라보고 가는 거니, 일단은 돈이 문제가 아니지만... '특수'자만 붙어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니까요. 기본 (재활치료) 수업료가 시간당 4만, 5만 원이 시작이니까요."
울산에서 중증 자폐인 박서준(17)군을 홀로 키워 온 엄마 전은정(53)씨의 말이다. 보통 발달재활치료의 골든타임은 '만 3~5세'로 꼽힌다. 은정씨도 아들의 초등학교 취학 전, 발달재활에 몰두하며 아이가 조금이나마 나아져 자립할 수 있길 꿈꿨다. 언어·감각통합·음악·조기교육 등 하루에도 3개, 4개 센터에 아이를 보내며 월 300만~400만 원을 쏟아부었던 이유다. 물론 싱글맘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었다.
그렇게 2년여간 발달재활치료에 매달렸다. 편도로 3시간도 넘는 울산과 수도권 사이를 매주 오갔다. 울산에는 질 좋은 의료 인프라나 재활치료 센터가 충분하지 않았다. 아들을 데리고 서울 연세 세브란스와 이대 발달센터, 경기 성남시의 분당서울대병원 발달·자폐 클리닉에 다녔다.
"보통 아침 6시 15분쯤 KTX를 타고 서울로 갔던 것 같아요. 1년 넘게 다녔을 때쯤에는 제가 너무 지치더라고요. 거기까지 가서도 두 타임 이상은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나마 두 타임을 다 하면 다행이고, 아이가 컨디션이나 기분이 안 좋아서 수업도 못하고 내내 울다가 오는 날이면 저도 기차 안에서 울면서 돌아왔었죠.
한 번은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울산에 내려가려는데 주말 직전이라 표가 없다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자고 온다' 이런 건 생각도 못 했고, 기차역에서 막 도와달라고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사정하니까 딱했는지 (기차표) 잡아서 도와주시더라고요."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날의 막막함은 은정씨의 마음에 생생하다.
치료의 질을 생각할 때, 은정씨는 이사 고민을 하고는 했었다. "서울로 이사 갈까 고민했었죠. 특히 이대 발달센터 다닐 땐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교육의 질도, 치료 환경도 서울이 훨씬 나았으니까요. 여러 사정 때문에 못 갔지만 지금도 좀 후회가 되죠."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발달장애인 가정 1,07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열 명 중 네 명(40.2%)이 '치료·재활을 위해 이사를 했다'고 답했고, 실제로는 못했지만 이사 고민을 한 경우도 네 명 중 한 명꼴(25.7%)에 달했다.
교육 인프라도 문제가 있다. 울산 지역 대학교에는 특수교육과가 없다. 은정씨의 설명이다. "엄마들이 지속적으로 울산대에 특수교육학과 설립을 요구하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가장 가까운 데가 대구대 특교과인데, 예전엔 대구대 출신 교사가 있다고 하면 그 센터에 엄마들이 막 줄을 서고 그랬어요. 그분들도 울산이 고향이 아니다 보니까, 금방 많이들 떠나시고는 한다는 문제가 있죠."
"저희 아들은 중증 자폐기 때문에, 혼자 살 수가 없어요. 우영우 같은 드라마를 보면 일반인들은 저희 아이도 교육을 통해 어떻게 (자립이) 가능할 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안 돼요. 교육이 가능한 경증 아이들과 달리 최중증 아이들은 그게 안 되다 보니까 더 자괴감이 느껴지고 더 큰 사각지대가 됐다고 느끼는 거죠. 요즘에는 정말 많이 답답해요."
(관련기사 ▶중증 발달장애인 받지 않으려 시험 봐서 걸러내는 복지관: 클릭이 안되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0409060003590 로 검색하세요.)
서준군은 이동지원 등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받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받아뒀지만, 정작 이용을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받은 월 이용시간이 90시간(하루 3시간가량·15등급 중 14등급)에 불과해서다. 받은 시간이 적으면, 일하려는 활동지원사도 거의 없다. 시간제 활동지원사 입장에선 그나마 일하는 시간이라도 많아야 생계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애가 90시간 받았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활동지원사도 같은 돈이면 경증인 아이 보려고 하겠지, 중증은 보려고는 안 할 거잖아요. (장애인 이용자를) 골라가며 받는 거죠. (활동지원서비스) 센터에 시간 써보려고 갔을 때 '받은 시간을 다 몰아서 달라(서비스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다 채운 것으로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을 포기한 은정씨는, 아들이 학교와 치료센터에 가 있는 시간을 빼고는 사실상 아이를 24시간 밀착해서 홀로 돌보고 있는 상황이다.
'치과 치료'는 많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숙제이자 고민거리다.
은정씨는 "치과가 정말 문제죠. 서준이 어릴 때 선배 (발달장애인) 엄마 얘기들을 들어보면, 나중에 굉장히 문제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정기 검진 차원에서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을 거의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꼬박 데려갔어요. 아이가 직접 의사 표현이 안 되니까 미리미리 봐 둬야 하는 거죠."
신체에 대한 통제나 언어 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일반 치과를 갈 수가 없다. 비장애인도 무서운 치과 특유의 '날카로운 기계 소리'가 들리는 동안 몸을 가만히 두기 어렵다. 이런 특성에 맞춰 수면치료나 결박, 전신마취하에 치료가 이뤄져야 하는데 비영리단체 '스마일재단'에 따르면 장애인 환자 치료가 가능한 치과 363곳(올해 9월 기준) 중 발달장애인이 갈 만한 곳은 전국에 52곳뿐이다.
서준군이 부쩍 자라기 전엔, 의료진 여러 명이서 몸을 붙들거나 결박 장치를 이용해서 검진과 치료를 하고는 했지만 최근엔 그마저도 어렵다. 은정씨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근데 이제 애가 커지니까... 키가 175㎝에 몸무게도 74㎏ 정도예요. 항상 가던 소아치과에서 '이제 서준이도 어른이다' 계속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이젠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실제로 서준군도 충치 3개가 발견돼 울산대병원 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찾았다가, 400만 원이 넘는 예상 비용이 든다는 소견서를 받고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추후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제도상의 비급여 치료비 감면을 받고 일부 후원도 받아서 직접 부담은 없었지만, 대개 발달장애인 가정에선 한 번 치과를 갔다가 수백만 원이 깨지는 일이 허다하다.
은정씨는 '전신마취 치료'에 대한 심적 부담도 크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가 제대로 깰지 안 깰지 걱정이 크죠. 자기표현을 못 하는 아이인데, 문제가 설사 생겨도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가 없고요... 주거 시설에 있는 (발달장애인) 아이들은 이를 그냥 하나씩 뺀다고 하더라고요. 거긴 애들이 한두 명 있는 것도 아니고, 치료비도 비싼 데다가 양치 등 제대로 관리를 하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특수학교에서 고1로 재학 중인 서준군은 2년 뒤면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은정씨에게 간절한 것은 두 가지였다. '낮 동안 지낼 곳'과 '주보호자인 부모가 긴급한 상황에서 돌봄을 맡길 곳'이다.
은정씨는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함께 울산광역시교육청에 '폐교'를 달라고 요구했었다고 한다.
"밖에선 아이들과 활동을 못해요. 사실 식당 나가서 밥 먹는 일도 힘들죠. 자전거를 타러 가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한번 타려고 해도 사람들 시선이 다 꽂히죠. 아이를 여기까지 키워내면서 조금씩 (사회적 인식이) 괜찮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렇게 시선이 곱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엄마들이랑 추진했던 게 폐교 이용이다. 아이들 수가 줄어 폐교가 많기 때문이다.
"폐교를 하나 받아서 ‘발달장애인 학교’처럼 꾸미는 거죠. 여름엔 운동장에서 캠프파이어를 해도 되고, 학교엔 식당도 교실도 있으니 일상생활 훈련도 할 수 있고요. 300명 정도 서명을 받아서 진행해 보려고 했는데 저희가 소수이다 보니까 그렇게 만만치는 않더라고요."
소박하고 절실한 이들의 요청에도 울산교육청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은정씨는 '긴급 돌봄' 시설을 마련해달라고도 정부에 당부했다.
"지금 저희한테 제일 필요한 게 24시간 공공 단기 보호센터예요. 제가 공황장애가 있어요. 밤에, 새벽에 갑자기 공황이 오면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병원에 달려가야 되는 거예요. 다른 엄마들도 결혼식, 장례식 같은 경조사에 부모님 아픈 데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문제죠. 한 발달장애인 부모님은 병상에 계신 나이 든 어머니께 '엄마, 우리 ○○이 괜찮아질 때까지 죽으면 안 돼' 이러셨다는 거예요.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모친 장례식장에도 못 가니까...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고, 시마다 하나 정도는 24시간 단기돌봄센터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부는 지난달 29일 '발달장애인 평생돌봄 강화대책'을 발표하며, 55억 원 예산을 들여 내년 4월부터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입원·경조사 등 긴급상황에서 일시적인(1주일) 24시간 돌봄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달장애인 총 4명이 머물 수 있는 긴급돌봄 센터가 전국 40개소에 설치되는 것이 시작이다. 제도가 잘 안착되어,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마다 최소한 한 곳씩은 마련되었으면 하는 게 25만여 명의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소원일 것이다.
▶인터랙티브 바로가기: 클릭하시면 1,071명 설문조사 결과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주소(interactive.hankookilbo.com/v/disability/)를 복사해서 검색창에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