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최고 수준의 외교단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 외교가에선 "국가 간 상호 관계에 층위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포괄적'이란 표현을 굳이 따로 붙이는 건 그만큼 서로가 절실하다는 의미다.
이번 결정은 양국이 상생을 위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베트남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 9,000개'가 상징하는 양국의 양적 교류는 사실상 '끝물'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이후 글로벌 기업들의 1순위 진출지가 된 베트남의 산업지대는 이미 포화상태다. 들어가고 싶어도 땅이 없고, 베트남 역시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결국 앞으로 30년간 양국 관계의 과제는 질적 성장이 핵심이다. 다행히 양국은 모두 녹색성장과 정보기술(IT) 등 고부가가치 산업 발전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설정한 상태다. 한국은 베트남의 청정에너지·IT 등 공장 부지가 필요 없는 현지 신규 산업에 진출이 가능하고, 베트남은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을 전수받아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
질적 성장은 안보 영역에서도 절실하다. 양국 국방부는 2001년 상호양해(MOU) 각서를 체결하는 것을 시작으로 충분히 많은 문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어느 쪽도 이를 실질화하는 작업에 나서지 않았다. 경제 교역 확충에 집중하느라 양국의 안보 국익이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한 핵심 당사국이자 북한과 정상 수교 중인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한국 입장에선 우리 상선의 항행 자유 보장, 평화통일의 키가 베트남에 있는 셈이다. 베트남 역시 중국발 안보 위협 증대로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긴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양국 관계 격상에 대해 "새 세대를 힘차게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남은 건 우리 정부가 '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국익의 '질'을 우선하며 행동에 나서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