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집권 유산이 부정당하는 동병상련 처지다. 막다른 길에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막막할 수밖에 없다. 독일판 철의 여인은 작년 12월 8일 자유세계의 영웅으로 퇴임했지만 지구적 위기의 원인 제공자로 추락했다. 재임기간 푸틴 대통령을 60여 차례 만나 친분이 두터우면서도 러시아 침공을 막지 못한 때문이다. 푸틴과 맺은 친분관계는 우리로 치면 ‘용공’이자 그를 치는 비수가 됐다. 메르켈은 “성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외교가 잘못된 건 아니다”라고 버티고는 있다. 맞는 말이지만 16년 집권에 대러 정책 실수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그의 실패다.
고립무원의 메르켈에 비하면 문 전 대통령은 나은 편이다. 그의 양산 자택은 밖에서 보기에 세상과 등지려는 듯 외부를 향한 건물 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자택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퇴임하면 잊히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대로 스스로 유폐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풍파를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은 걸 정치인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신이 전 정권을 향한 적폐청산의 바람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그의 시간이 지나면서 내치 외치 할 것 없이 집권의 성과는 뒤집히고 부정당하고 심지어 범죄로 단죄까지 되고 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구속을 전후해 그는 입장문을 두 차례 내며 아쉬움 이상의 것들을 쏟아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고민일 수도 있으나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여러 쟁점이 포개진 사안이고, 더구나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되는 정치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사안마다 입장을 밝혀 신구 정권의 충돌을 빚는 것보다 침묵을 선택한 메르켈의 상식을 따를 필요가 있다. 두 전직 지도자의 처지와 대응은 후임자들에겐 자신의 미래일 수 있다. 지도자 평가는 결국 지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내려지게 마련인 것 역시 무서운 교훈이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원래 공정과 상식을 앞세웠다.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게 우선할 가치임에 분명하지만 현실을 움직이는 건 종종 상식이다. 상식에 기반해야 법과 원칙도 바로 설 수 있다. 많은 이전 정권의 문제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공감받지 못하는 원칙은 국민 마음을 열지 못했고, 현실에서 벗어난 원칙론은 시간이 흘러 적폐로 쌓였다. 이처럼 어색한 장면들이 벌써 빚어지는 점은 우려할 일이다.
윤 정부 출범 초기 여론은 대통령에게 진언할 사람을 찾아 나섰다. 충언을 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한 사람들이 비판받았고 일부는 물러났다. 이에 비춰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버티기는 상식적이지 않다. 이태원 참사 이후 하루라도 자리에 있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는 그다. 그런데도 오히려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적 재난에 비유하며 중대본 대책을 주도한 것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정식 노동부 장관의 존재감이다. 한국노총이란 노동계 출신의 장관은 대화의 적임자일 텐데 막상 파업사태에서 역할이 없다. 법적으로 화물연대가 노동법 대상이 아니라고 하나 민폐노조 등 공격을 퍼붓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사태 해결의 적임자인지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것은 권리의식을 토대로 법과 제도가 마련되는 데 있다. 산업물류 차질로 인한 손실과 불편이 감내 수준을 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강경론 속에 이들의 요구가 무시되고 경시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