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바꾼 벤투의 4년 뚝심

입력
2022.12.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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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53) 감독은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을 이끈 외국인 감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2018년 8월 사령탑에 올라 4년 3개월이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체계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공격에 힘을 싣는 ‘빌드업 축구’의 뚜렷한 철학을 심었다는 평가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선 수비, 후 역습’이 대표적인 전술이었다. 실제로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의 공 점유율은 37%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들고 온 ‘빌드업’ 축구는 이를 바꿔 놓았다. 문전으로 공을 멀리 보내 승부를 거는 방식이 아닌, 우리 진영에서부터 패스로 공격 주도권을 갖고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팀과 겨루는 월드컵에선 수비 위주로 임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했지만 벤투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약팀을 상대로 치른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본선 직전 강팀을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도 변함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만의 방식으로 16강 진출을 일궈내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대표팀의 공 점유율은 48.7%에 달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2019 아시안컵 8강에선 개최국 카타르에 일격을 당했고 같은 해 월드컵 2차 예선에선 북한ㆍ레바논과 잇달아 0-0 무승부에 그쳤다. 특히 지난해 3월 한일전에서 0-3으로 참패한 것은 치명타였다. 벤투호는 그러나 10차전까지 치른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8경기 만에 본선행을 확정하는 등 역대 가장 안정적인 전력으로 본선에 올랐다. 벤투 감독은 “팬과 언론의 의견도 있겠지만 나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우리가 강팀을 상대로도 기존과 다른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 선발 및 전술에도 비판이 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축구 팬들도 매 경기 선발 라인업을 대부분 맞힐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스트 11이 너무 명확했다. 쓰는 선수만 쓴다는 것이었다. 벤투 감독이 지난해 6월 한국 축구 사상 최장수 사령탑 신기록을 썼을 때는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자는 벤투 감독”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긴 A매치 공백 기간 때문에 벤투 감독이 장수했다는 것이다. 벤투 감독은 그러나 이런 비판을 뚝심으로 이겨내고 ‘한국 축구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이란 성과를 냈다. 특히 페데리코 발베르데(레알 마드리드), 로드리고 벤탕쿠르(토트넘) 등 세계적인 미드필더들을 상대로 대등한 중원 싸움을 펼친 장면은 벤투 축구 철학의 명확한 성과다.

그는 겉으로 보기엔 차가운 고집쟁이 이미지지만 선수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따뜻한 리더십으로 신뢰를 쌓았다. 지난달 마지막 평가전을 앞두고 파주 훈련장에 소집된 선수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커피차를 부르는가 하면 처음 발탁된 선수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특히 지난 가나전 종료 휘슬이 예상보다 빨리 울리자 주심에게 항의하는 선수들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모습도 축구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선수들 역시 그를 향한 신임이 두텁다. '캡틴' 손흥민은 포르투갈을 꺾은 후 "벤투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를 벤치에서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강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