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5억 원.
법원이 6일 최태원(62)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1)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을 선고하며 책정한 재산분할 금액이다. 최 회장은 역대 재벌가 이혼 재산분할 금액 중 최고액을 노 원장에게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판결 내용을 뜯어보면, 법원이 노 관장이 아닌 최 회장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최 회장이 내세웠던 논리가 재산분할 금액을 결정하는 데 반영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혼의 주된 책임이 최 회장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15년 최 회장이 언론에 보낸 편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노 관장과의 결별 의사를 밝힌 데다, 혼외자식의 존재와 외도 사실까지 털어놓은 점이 반영된 결과다.
법원은 "가정을 지키겠다"며 버텼던 노 관장의 입장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혼 소송 수임 경력이 많은 이승우 변호사는 "위자료 1억 원은 실무에선 매우 높은 금액"이라며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결국 최 회장에게 있다는 얘기"라고 밝혔다.
법원은 최대 관심사였던 재산분할 금액 책정과 관련해선 최 회장 손을 들어줬다.
노 관장은 당초 최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인 SK㈜ 주식 17.5%(1,297만여 주) 가운데 50%(648만여 주)에 대해 재산 분할을 청구했다. 6일 종가 기준으로 1조3,500여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을 '이혼 대가'로 요구한 것이다.
재계에선 "최 회장이 증여와 상속으로 SK계열사 지분을 대부분 취득했기 때문에, 노 관장은 재산 형성 과정에서 기여가 미미했다"는 최 회장 주장에 대체로 공감했다. 노 관장이 요구한 SK주식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유(상속·증여)재산이란 것이다. 반면 "혼인 기간이 오래된 만큼, 노 관장 역시 최 회장 재산 유지와 증식에 역할을 했다"며 분할 청구한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법원은 "노 관장이 SK 주식의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려워 최 회장의 일부 계열사 주식 등과 노 관장 재산만이 분할대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노 관장은 재산분할 청구 금액의 5% 정도만 받게 된 반면, 최 회장은 SK 주식을 모두 지키게 돼 향후 경영권 갈등의 우려는 높지 않을 전망이다. 이인철 이혼전문 변호사는 "인정 금액이 커서 분할 비율이 낮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노 관장 패소에 가까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번 판결은 2020년 확정된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의 이혼 소송 결과와도 흡사하다.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은 이 사장 재산의 절반(1조2,500여억 원)을 분할해달라고 법원에 요구했지만, 법원은 0.9%(141억 원)만 인정했다. 이 사장 재산이 대부분 ①증여·상속으로 이뤄져 분할 대상이 아니고 ②부부 공동 재산 700억 중에서 임 전 고문이 받을 수 있는 금액도 20%밖에 안 된다고 봤다.
법조계 일각에선 노 관장의 기여도를 인정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혼 소송 경험이 많은 양소영 변호사는 "상속·증여라고 해도 혼인 기간이 길면 재산 유지와 증식에 대한 기여도는 금액 산정 때 인정해왔다"며 "노 관장의 대·내외적 역할까지 고려하면 일정 부분 기여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날 판결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