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동안 100여 개의 오디션에 떨어졌다. 배우 문상민(22)에게 '취업'의 문은 좁디좁았다. 낙방이 거듭될수록 그의 자존감은 옥상에 버려진 화분처럼 메말라갔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번번이 퇴짜를 맞고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문상민은 지난 1월 tvN 드라마 '슈룹'의 성남대군 역을 따냈다. 극 중 역모에 맞서 어머니이자 중전인 화령(김혜수)과 함께 왕조를 지키는 중요한 인물로, 네 번의 연기 면접을 거쳐 어렵게 얻은 배역이었다.
시작은 미약했던 신인은 4일 방송된 마지막 회에서 화령에게 슈룹(우산의 옛말)을 씌워주며 엔딩을 장식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어머니의 속을 태웠던 아이가 어느덧 부쩍 자라 부모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이 됐다는 극의 메시지는 문상민의 성장과도 묘하게 겹친다. "사고 많았던 성남대군의 성장에 제가 보이더이라고요. 처음엔 바짝 얼어 표정도 굳고 대사도 불안했거든요. '슈룹' 촬영하며 방송을 틈틈이 봤는데 볼 때마다 한 번씩 울었던 것 같아요. 찡한 장면도 있고 울컥울컥하더라고요."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을 찾은 문상민의 말이다.
문상민은 시청률 10%를 웃돈 '슈룹' 인기의 불쏘시개였다. 190cm의 훤칠한 키에 중저음의 듬직한 목소리와 안정적인 발성이 젊은 배우의 무기였다. 시청자의 눈도장을 찍기까지 그는 치열하게 첫 사극을 준비했다. 한자 공부는 기본. 붓 잡는 법부터 승마까지 모두 새로 배웠다. 무술 장면도 대역 없이 대부분 직접 찍었다. 문상민은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검을 들고 맞서 싸우는 장면을 찍다 왼쪽 눈 밑이 약 3cm 찢어졌지만, 병원에서 봉합 치료를 받고 바로 현장에 복귀했다. 열의로 가득찬 그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캐릭터의 양면성을 살리는 일이었다. 문상민은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고 여겨 방황하는 성남대군이 큰형의 죽음을 계기로 눈빛이 달라지는 데 그 변화를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문상민은 인기 비결을 "캐릭터 덕"으로 돌렸다. 그가 연기한 성남대군은 공정의 아이콘이었다. 적통 둘째 왕자였던 그는 계급장 떼고 11명의 왕자와 학문과 무예로 경합을 벌여 세자가 됐다. 어려서 궁 밖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자란 그는 궁 안에서만 자라 세상 물정 몰랐던 다른 왕자들과 달리 민심에도 밝았다. 성남대군은 역병 환자들의 주거지에 화재 범죄가 벌어지자 "역병에 대한 거짓 정보와 무지함이 백성들의 불안과 공포를 낳고 그 공포가 혐오와 차별로 증폭되고 있는 것"이라며 철저한 역학조사를 통해 '함께 사는 법'을 제시한다. 드라마는 고증 논란에 휘말렸지만, 문성대군은 사회적 재난의 시대에 필요한 리더로 주목받았다.
그런 성남대군을 연기하는 데 김혜수는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 "촬영 전 김혜수 선배님과 '성남대군이 이 말을 왜 했으며 어떤 감정이었을까'를 함께 얘기하며 촬영했어요. 정말 감사했죠. 지난 추석 땐 연휴에 촬영이 있어 몇 친구들이 고향을 못 갔는데 연락을 주셨죠. 모여서 밥이나 먹자고요. 잊지 못할 순간이었죠."
문상민은 2019년 드라마 '크리스마스가 싫은 네 가지 이유'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대학 입학과 동시에 데뷔한 그는 카메라 밖에서도 활발한 청년이다. 입학 하자마자 대학 홍보 대사로 활동한 그는 새내기로 학교 축제 때 동아리 주점 역대 최대 매출을 이끌었다. 그런 청년의 취미는 하늘보기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 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엔 노을로 물든 하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문상민은 "고1 때 예고에 다니기 위해 청주에서 홀로 서울로 올라온 뒤 언젠가부터 하늘을 한 번도 안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틈틈이 하늘을 보고 여유를 되찾으려 한다"며 "다음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사람 감정 몽글몽글하게 하는 풋풋한 대학생 역을 해보고 싶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