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껍질은 하야하라!" 시진핑 몰래 욕하는 중국인들

입력
2022.12.04 14:26
17면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 맞물려
인터넷서 정부 비판 의미의 각종 '조어' 유행

정부 검열을 따돌리기 위한 중국인들의 재치가 '백지 시위' 정국에서 빛나고 있다. 검열 대상에 오른 단어와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 어휘를 써서 검열을 피하는 식이다.

'바나나 껍질'과 '새우 이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나나 껍질은 중국어로 ‘샹자오피(香蕉皮)’로, 이니셜이 '시진핑'과 같다. 또한 새우 이끼는 중국어로 샤타이(虾苔)인데, 발음이 퇴진, 하야라는 뜻의 샤타이(下台)와 비슷하다. '바나나 껍질 새우 이끼'라는 외계어 같은 문구가 중국인들에겐 '시진핑 하야'로 읽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열에 걸리지 않는다.

살벌한 시위 와중에 웬 알파카?

중국 정부가 인터넷 검열을 본격화한 2010년대 초반 유행했던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풍자적 사진이나 영상)'도 제로 코로나 항의 시위를 계기로 부활했다.

이런 식이다. 풀과 흙으로 덮인 길 위를 걷는 말 또는 알파카의 사진이 있다. 언뜻 보면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 풀(草), 흙(泥), 말(马)을 중국어로 연달아 발음하면 "너의 엄마를 X 먹여라"라는 뜻의 욕설인 '차오니마(肏你妈)'와 비슷하게 들린다. 알파카 밈은 검열관들을 약올리는 의미로 사용된다.

백지 시위의 시발점이자 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진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선 한 여성이 알파카 세 마리를 길 한복판에 끌고 나오기도 했다. 정부를 비판하고 조롱한 것이지만, 공안 당국은 알파카를 끌고 다닌 행위 자체에 범죄 혐의를 씌울 순 없었다.


"바나나 껍질, 체포 못하는 게 시진핑의 딜레마"

시진핑 국가주석의 모교인 베이징 칭화대학교 학생들은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하는 '프리드만 방정식(Friedmann equations)'이 적힌 A4용지를 들고 시위에 나왔다. 방정식의 주인공 프리드만의 발음이 '봉쇄당하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을 뜻하는 '프리드맨(Freed man)'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향한 불만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광둥어를 사용한 정부 비판이 쏟아졌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 남서부의 방언인 광둥어를 사용할 경우 표준어인 만다린어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집중된 검열을 피할 수 있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중국 온라인 공간에선 톈안먼 민주화 운동(1989년)을 떠올리게 하는 '톈안먼'과 톈안먼 시위 날짜인 '6월 4일'도 검열 대상에 오른다. 중국 네티즌들은 '5월 35일'이란 표현을 암호처럼 사용한다. 5월 31일 이후 나흘이 지난 날짜라는 뜻으로, 6월 4일을 가리킨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최근 칼럼에 “시진핑을 조롱한 것도,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고 그저 '바나나 껍질'이라고 쓴 사람들을 체포하지 못하는 것이 독재자(시 주석)가 처한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