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나의 집: ①도시의 섬이 된 늙은 집들]
서울에서 1970년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단독주택(다가구 주택 포함)이 총 2만2,980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택의 통상 내구연한인 50년을 넘어선 초(超)노후 주택들인데, 이 주택의 상당수가 안전진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수리·수선마저 할 수 없는 악조건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 50년 이상인 서울 노후 단독주택의 구체적 규모와 주택별 세부 입지 조건이 전수통계로 집계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노후 단독주택의 56%는 차 한 대도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으로 포위된 '길 없는 집'이었다. 35%는 가파른 경사로에 위치했고, 대지 면적이 85㎡(약 25.7평)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주택 비율이 36%에 달했다. △협소한 통행로 △가파른 경사 △좁은 대지면적은 노후주택의 주거환경 정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후 단독주택의 정확한 규모와 주거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일보는 토지·건물 빅데이터 플랫폼 ‘밸류맵’과 함께 서울의 모든 건물 약 96만 동의 건축물 대장 및 토지 대장을 수집했다. 여기서 단독주택 25만3,000여 채를 분류한 뒤, 준공 52년을 경과한 노후주택 2만2,980채를 추출했다.
지어진 지 50년 이상 지난 단독주택을 따로 뽑아 이들 가옥의 층수, 구조, 입지(도로조건·형상·경사)를 전수조사해 종합한 결과는 행정청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번 자료를 활용하면, 사용 승인 반세기를 넘긴 초노후주택의 실태 파악 및 관련 정책 연구·설계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일단 지역별 분포를 봤더니, 서울 25개 자치구 중 성북·용산·강북·동대문·종로구 순으로 노후 단독주택이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타 지역에 비해 개발이 늦게 진행되었고 토지 가치가 높은 강남구엔 1970년 이전에 지어진 노후 단독주택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단독주택 2만2,980채는 서울 24개 자치구 312개 법정동에 분포했다. 이 노후주택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특성은 바로 주택 주변의 '길'이다. 전체 노후 단독주택의 절반 이상인 1만2,971채(56.4%)가 좁은 골목에 포위돼 있었다. 오토바이 통행만 가능한 골목에 걸쳐 있거나, 아예 골목길조차 접해 있지 않은 경우(맹지)를 합친 숫자다.
특히 대지면적이 좁을수록 도로 조건이 열악했다. 대지면적 85㎡ 미만인 주택 8,384채 중 도로 조건이 나쁜 집은 66.9%인 5,613채로 집계됐다. △대지면적 60~85㎡ 미만 65.6% △45~60㎡ 미만 69.2% △20~45㎡ 미만 70.8% 등 집이 좁을수록 도로 조건이 나빠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비해 85㎡ 이상 대지에 들어선 노후주택 1만4,596채 중 도로 조건이 나쁜 집은 7,358채(50.4%)로 절반에 머물렀다.
차가 못 다니는 좁은 골목을 끼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①이동이 불편하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좁은 골목 특성상 ②대로에 비해 치안이 나쁠 개연성이 높고, ③사생활 침해나 절도 등 가능성이 높으며, ④좁은 길이 수리나 각종 주거환경 개선의 장애물로 작용해 해당 주택의 개발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사업성 측면에서나 실현 가능성으로 봐도 좁은 골목에 둘러싸이고, 입지가 나쁜 낡은 집 한 채의 거주자가 '스스로' 열악한 조건을 바꾸기는 지극히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규모 재개발은 1만㎡(약 3,000평) 이상 토지에서만 가능하고, 소규모 저층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의 '모아주택' 개발도 대지면적 합계가 1,500㎡(약 450평) 이상이어야 한다.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노후 단독주택의 두 번째 특성은 '언덕집'이 많다는 점이다. 전체 노후 단독주택 중 8,051채(35.0%)는 15도에 가까운 완경사 및 급경사 또는 고지대에 지어진 집이었다. 이것 역시나 수리나 재개발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노후 단독주택의 세 번째 특징은 대지 모양이 고르지 않다는 점이다. 집을 짓기 부적합한 △삼각형 △역삼각형 △사다리꼴 등 특이한 모양을 가진 주택이 많았다. 이런 대지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대지에 비해 수리나 재건축에 불리하다.
열악한 입지 조건을 두 가지 이상 가진 집들도 많았다. ①좁은 골목 ②경사지 ③특이한 모양 등의 변수가 겹치는 경우가 다수였다. 분석 결과 길 없는 노후주택 1만2,971채 중 6,857채(52.9%)가 열악한 조건을 하나 이상 추가로 안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서울의 노후 단독주택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통계 형태로 구체적으로 도출된 이상, 열악한 입지의 이 주택들의 환경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 리더는 “서울 노후주택의 특징은 좁은 골목과 길 사이에 갇혀 있으면서, 다른 조건까지 좋지 않은 ‘복합적 열악함’으로 요약된다"며 "이렇게 고립된 주택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서울의 도시재생 사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개발이 어려운 곳에서는 집 자체를 수리해 성능을 올리는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도시계획에서 재개발 등 특정 사업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사업성 등의 문제로 철거→신축의 개발 방식이 안 통하는 곳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했다. 그리고 “집수리가 대안 중 하나로 가능한데, 좀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의 집수리 사업은 '주택성능개선지원구역'에서만 진행되고 있어 이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특정 지역에 대한 낙인효과 등을 우려해 기사에서는 세부적인 자치구-법정동별 분석을 최대한 지양했습니다. 대신 원하는 독자만 살펴볼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별도의 지역별 검색 기능을 갖췄습니다.
* 한국일보 인터랙티브 '박제된 나의 집' : (링크가 열리지 않을 경우 아래 URL을 복사해서 이용해 주세요)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old_house/
※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서울 ‘초 노후주택’ 2.3만채 통계화 어떻게 했나 기사로 이어집니다.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몰아보기(☞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①서울 '초노후주택' 2.3만 채... 그중 56%는 차도 못 가는 골목에 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316290003977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814340000766
③수리도, 재개발도, 이사도 안돼요... 늙은 집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121190000960
④[단독] 쩍쩍 갈라지고 파여도...노후주택 75% 점검조차 없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2110004952
⑤노후주택 가구주 절반이 60대 이상... 집과 사람이 함께 늙어간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14270003639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17240000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