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 지하 190m 갱도에 고립됐던 광부 2명이 221시간 만에 생환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외부와 단절된 극한 상황에서 광부들은 커피믹스와 지하수로 연명하다가 극적으로 구조돼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줬다. 주인공들은 지난달 11일 퇴원 기자회견을 끝으로 공개석상에선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작업반장 박정하(62)씨는 '희망 전도사'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퇴원 이후 박씨는 방송 출연에 나섰다. 지난달 27일과 28일 강원 정선군 남면의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 자택에서 KBS '한국인의 밥상' 촬영에 나섰다. '위로의 밥상'을 주제로 4시간 동안 진행된 방송에서 무쇠 불판에 구운 삼겹살과 황태백숙, 미역국이 밥상 위에 등장하자, 박씨는 "삼겹살기름을 종이컵에 받아 꿀꺽꿀꺽 마셨다"며 광부들의 생활상을 전했다.
진행자인 최불암씨가 현장에서 질문지를 별도로 작성해 박씨를 인터뷰하자, 담당 PD는 "최씨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입원하는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무엇인지, 퇴원한 뒤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무엇인지 물었고, 박씨는 "미역국과 청국장"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박씨는 KBS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 출연해 "적극적으로 회복 중"이라며 근황을 전했다. 이튿날인 29일 tvN 예능프로그램인 ‘유퀴즈온더블록’ 녹화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KBS대구 프로그램인 '2023 희망나눔'에 출연하는 박씨는 KBS의 연말 제야음악회에서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할 예정이다.
병원에서 퇴원했지만 아직 박씨는 매몰사고 이전의 건강상태를 회복하지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정신없이 활동해야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게 박씨가 설명한 방송 출연 이유다.
실제 박씨는 아직 주변이 어두워지면 불안해하는 증세가 남아 있다. 불도 끄지 않고 잔다. 악몽을 꾸다가 놀라서 깨는 등 트라우마 증상이 여전해 강원 태백의 한 병원에서 통원 치료 중이다. 박씨와 함께 구조된 보조작업자 박모씨도 퇴원한 뒤 서울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고 있다.
박정하씨는 '안전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병원 입원 당시 정부 관계자들에게 탄광 안전 문제를 챙겨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에게 "정부의 탄광 안전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개선해달라"고 했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간부들에게도 "동료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좀 더 신경써달라"고 당부했다. 박씨는 "40년이 지났는데도 광산의 열악한 작업 환경은 변한 것이 없다"며 "구조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안 나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