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의 무기화...푸틴의 '에너지 전격작전'

입력
2022.11.30 16:00
24면

편집자주

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 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잔인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 공개된 위성사진에서 우크라이나 야경은 그 아래 흑해처럼 온통 검은색의 모습이다. 주변국과 달리 빛이 보이지 않고 바다와 구분이 어려운 것은 러시아의 전면적인 기간시설 공격이 이유다.

러시아는 남부 요충지 헤르손에서 퇴각한 이후 우크라이나 전역의 발전소 등 사회기간 시설을 집중 파괴하고 있다. 미사일, 로켓, 드론에 의한 공격이 하루 100차례 이뤄질 만큼 강력하다. 그 잔인성에 놀란 주민들은 이번 작전을 주도하는 러시아 군사령관 세르게이 스로비킨을 ‘아마겟돈 장군’으로 부른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력 인프라를 공격해 파괴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는 ‘추위의 무기화’로 압축된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무기로 삼아 ‘유럽 길들이기’에 나섰던 것처럼 겨울 추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에너지 전격작전’이다. 유럽에 12월부터 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예보돼 있어 푸틴의 의도대로 유럽국가들과 우크라이나는 에너지난, 전력난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도 “러시아가 겨울을 무기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국가들은 일찍부터 에너지 확보에 나서 동절기에 사용할 천연가스 물량을 비축해 놓은 상태다. 독일은 원전 2기의 폐쇄를 유보하고 겨울에 가동하기로 했다. 유럽의 적절한 대응에 먼저 반응한 곳은 러시아 원유시장이다. 러시아산 원유가격은 서방이 상한선으로 논의 중인 배럴당 65~70달러보다 아래인 52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가스 밸브를 잠그는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가 유럽에는 효과가 없을 전망이다.

유럽과 달리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상황은 절박하다. 주요 도시 인근의 수력발전소를 포함한 발전시설 40%가 파괴됐다. 전체인구 4분의 1이 전기 없이, 키이우 시민 80%는 수도공급 없이 견디고 있다. 전기, 수도가 없으면 가정은 물론 병원 학교 공공시설까지 정상 기능이 불가능하다. 겨울 혹한마저 불어온다면 수백만 명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적했다.

혹독한 겨울 추위는 역사 속에서 러시아의 무기였다. 러시아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은 1812~13년 겨울 모스크바 추위에 무릎을 꿇고 패배의 길을 걸었다. 나치 히틀러의 운명도 1941~42년 겨울 러시아 공격 실패가 큰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푸틴에게 이번 겨울 추위가 우크라이나전쟁의 수세 국면에서 벗어날 기회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미국 애틀랜틱 카운슬의 멜린다 해링 부국장은 푸틴의 이번 작전을 1948년 스탈린의 베를린 봉쇄에 비유했다. 당시 소련은 연합국이 서베를린 관할권을 포기하도록 전면 봉쇄했으나 미국과 서유럽은 대공수작전으로 이를 무력화시켰다. 베를린 봉쇄는 11개월 만인 이듬해 5월 풀렸다.

최근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하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모든 고통이 종식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 푸틴의 이번 봉쇄작전이 민간인을 괴롭히려는 에너지 테러란 사실을 자백한 발언이다. 추위와의 싸움은 가혹하겠지만 어떤 타협에도 완강히 저항해온 우크라이나인들이 더 분노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태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