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와 물안개가 그려낸 동강의 겨울

입력
2022.11.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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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린다는 소설(11월 22일)도 지나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12월을 코앞에 둔 제주는 여름옷을 입을 만큼 날씨가 따뜻하다. 옛 속담에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이맘때 날씨가 추워야 내년 보리농사가 잘된다’는 뜻으로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중, 몇 주 전 찾아갔던 강원 영월 동강이 생각났다. 그날은 예고치 않은 영하의 날씨에 몸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강가로 나가보니 갑작스러운 찬 공기가 따뜻한 수면 위를 훑고 지나간 자리에 하얀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때마침 서리까지 내려 메밀꽃에는 소금이 달라붙은 듯 온통 새하얗다. 신비스러운 겨울 풍경을 자세히 보기 위해 강가로 바짝 다가갔다. 새벽부터 차가운 물속에 발을 담그고 먹이를 기다리던 백로들이 부스럭거린 내 발걸음 소리에 놀랐는지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그 순간 날갯짓하는 백로,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은은히 퍼지는 물안개가 ‘삼위일체’를 이루며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선사했다.

서울은 지금 눈 대신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비는 춥기만 하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하지만 이번 겨울비는 남쪽 지역 가뭄에 단비가 될 것이다. 또한 차가운 바람을 몰고 와 제대로 된 겨울을 선사할 것이다. 이제 겨울다운 겨울을 맞이할 시간이다

왕태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