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량마허. 대기업과 각국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평화로운 지역이다. 인근 직장인과 주민들에겐 수변 산책길이 명소로 꼽힌다. 이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공안(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돼 살벌했다. 전날 저녁부터 자정까지 대규모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가 벌어진 탓이다. 억압적인 시진핑 체제를 뚫고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량마허 산책로에는 공안들이 2명씩 짝을 지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며 검문을 하기도 했다. 량마허 물길을 따라 양측으로 조성된 도로에는 20~30m 간격으로 공안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 긴급 출동에 대비하려는 듯 전부 시동을 켠 상태였다.
날이 저물자 경계는 더욱 삼엄해졌다. 공안 차량 100여대가 량마허 주변을 포위하듯 에워싸고 오가는 인원 하나하나를 감시했다.
베이징에선 기자의 사진 취재도 자유롭지 않다. 기자가 사진 찍는 것을 알아챈 사복 차림의 공안이 다가오더니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했다. 사진 삭제하는 것을 일일이 보여줬지만, 공안은 기자가 량마허를 떠날 때까지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전날 대규모 시위를 중국 정부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27일 량마허에 모인 시위대는 수백 명으로 추산된다. 촛불, 꽃, 플래시가 켜진 휴대폰을 들고 모인 시위대는 "코로나19 봉쇄를 해제하라", "핵산 검사(PCR 검사)는 필요 없다", "자유를 달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확진자 1명만 나와도 아파트 단지를 통째로 봉쇄해버리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것이다.
시위자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색 A4 용지가 들려 있었다. 백지를 들고 있는 스스로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백지 시위'가 오프라인으로 확산한 것이다. 백지는 정부의 가혹한 검열과 자유 탄압을 상징한다. 웨이보를 비롯한 중국 SNS에는 "A4 용지 판매가 금지됐다", "A4 용지를 사재기 해 둬야 한다" 같은 말도 퍼졌다.
28일 오후 베이징 하이뎬구에 위치한 베이징대를 찾았다. 중국 최고 명문이라는 이 대학에서도 27일 학생 수백 명이 백지를 들고 나와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중국 국가와 인터내셔널(혁명가)을 불렀다.
학교 정문에서 만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교환학생 윌슨(22)씨는 "재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와 구호를 외쳤다.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계속된다면, 시위도 더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다"면서 익명을 요구한 재학생 A씨(21)는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누구는 정부 정책이 맞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싫어한다. 지금은 뭐가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고만 했다. 최고 엘리트인 그가 3년간 지속된 철통 방역을 신뢰하거나 지지한다고 답하지 않은 것은 적잖은 중국인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 다른 재학생 B씨는 "시위가 있었지만, 일부 학생들의 행동이었을 뿐이다. 한쪽 면만을 보지 말라"며 서방 언론들이 편파적 보도를 하고 있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 중계를 하는 중국중앙(CC)TV는 지난 26일부터 관중석을 잡은 화면을 거의 내보내지 않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외국인들의 모습을 본 중국인들의 제로 코로나 반발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해서다. 베이징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한 한국인 유학생은 "월드컵을 본 중국 친구들이 새삼 놀라면서 '한국에서도 저렇게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냐'고 물어 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