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장애인 활동지원사 양미숙(가명·70)씨.
그는 일흔의 나이로 태권도를 배운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위해 직접 찾은 자구책이다. 미숙씨가 지원하는 이용자는 100㎏이 넘는 30대 남성 발달장애인. 7년째 줄곧 일상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사이지만, 미숙씨도 자기 몸무게의 배는 되는 이용자가 불만을 몸으로 표출할 때면 겁이 난다.
“발달장애인은 우발적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잖아요. 갑자기 제 머리채를 잡거나, 밀친다든가. 그래서 항상 방어태세가 돼 있어야 해요. 걔도 저도 다치면 안 되니까요. 무술 배우는 것도 '나 만만하게 보지마' 그 친구에게 알려주려는 거죠.”
미숙씨는 발달장애인 이용자 2명을 지원한다. 주 52시간(월 208시간)을 꼬박 채워 일하고 받는 돈은 월 세후 200만 원대 초반. '사회적 필수 노동자'지만, 전체 임금 근로자 평균 소득(2020년 기준 세전 320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처우다. 그는 "전 그래도 혼자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니지만, 오롯이 혼자 아이 키우며 먹고살려고 이 일을 시작한 경우들은 정말 힘들고 슬프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미숙씨의 월급이 오를 수 있을까. 국회에서는 장애인 관련 예산 증액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5,490억 원 증액한 2조 5,409억 원으로 편성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운동의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 요구 시위와 유관 단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증액된 예산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내년도 활동지원 수가는 시간당 1만7,000원(올해 1만4,805원)으로 약 15% 인상된다. 중증 장애인을 돌볼 경우 지급하는 가산수당도 시간당 5,000원(올해 2,000원)으로 증액된다. 이용 대상자도 11만5,000명에서 13만5,000명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에 가까운 처우를 받았던 10만2,600여 명(지난해 말 기준)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의 임금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복지위에서 증액한 예산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그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상임위에서 합의해도, 예결위 종합심사 과정에서 변경돼 본회의에서 의결하기 때문이다.
활동지원 수가가 올라도, 전부 활동지원사 손에 떨어지는 건 아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수가의 25%까지는 정부 위탁을 받은 민간 활동지원 제공기관 몫이다. 나머지 75% 내에서 인건비를 전부 충당해야 한다.
최근 전국여성노조가 발표한 활동지원사 354명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활동지원사 일이 유일한 주업인 비율은 82.2%, 일평균 근무시간은 7시간(일주일 36.5시간)이었는데 세후 월평균 임금은 157만 원에 그쳤다. 수가가 15% 올라도, 실수령액은 180만 원 남짓인 셈이다. 응답자의 대다수는 50·60대(74.2%) 여성(93.5%)이었다.
저수가로 인해, 최저시급에 주휴수당·연차수당 정도를 제외하고는 법정수당(연장·휴일근로수당 등)은 보장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현장에서는 말한다.
전덕규 전국활동지원사노조 사무국장은 "정부에서 연장근로수당(주 40시간 초과근무 시 지급되는 수당) 등은 아예 수가에 반영하지 않다 보니, 기관에선 장시간 일하는 활동지원사를 복수 기관으로 나눠 '쪼개기 계약'을 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하루 13시간, 주 5일을 일하는 활동지원사라면 연장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게끔 8시간·5시간으로 나눠 두 개 기관에서 근로계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근무 환경도 활동지원사들이 겪는 큰 어려움이다.
민주노총이 올해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요양보호사 등 5개 돌봄 직종의 1,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정규직이 8.3%, 계약직은 91.7%로 나타났다.
고용 불안의 문제뿐 아니라, '대인 서비스'라는 특성상 활동지원사는 장애인 이용자가 코로나19나 기저질환으로 급작스럽게 입원하거나, 개인 사유를 이유로 서비스를 취소하면 곧바로 일감이 끊기게 된다. 시급 노동자기 때문에 이는 곧 '임금 삭감'이다.
활동지원사 단체에서 안정적인 소득과 생활 보장을 위한 '월급제 시행'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김완수 공공운수노조 장애인활동지원지부 사무국장은 "이용자 사정으로 갑자기 계획된 일정이 취소되거나, 노동자가 아파서 일하기 어려운 상황 등에도 '시간제 노동자'기 때문에 임금을 보전받을 안전장치가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월급제를 실시하면 이용자와 활동지원사 간 시간 조정을 통한 '부정수급' 문제나, 휴게시간에 요구되는 '무급 노동' 문제도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칙적으로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4시간에 30분, 또는 8시간에 1시간 휴게시간을 갖게 돼 있다. 하지만 여성노조 설문조사 결과, 휴게시간을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81.6%에 달한다.
17년째 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는 김기순(63)씨는 "일이 너무 힘들어 활동지원사들이 정부에 요구해 받아낸 휴게시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경련 발작이 있는 장애인 이용자라면, 활동지원사 부재중에 낙상사고 등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곁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휴게시간에도 사실상의 '무급 노동'이 이어지게 되는 이유다.
장애인 이용자 특성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활동지원은 이동지원과 가사업무뿐 아니라 신변(대소변)처리, 위생관리 등 신체적 노동 강도가 센 경우도 많다. 대인 서비스 특성상 감정노동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하지만 병가도, 산재도 쉽지 않다. 업무 과정에서 이용자와 갈등과 마찰이 생겨도 기관은 잘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말이다.
미숙씨는 "활동지원사 하기 전엔 2000년대 초반부터 장애 아동을 돕는 '특수교육실무원'을 했다. 실무원은 제도권(학교) 안에 있어서 보호받을 울타리가 있었지만, 활동지원사는 완전히 제도권 밖의 일이고 굉장히 외로운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일하면서 손 깁스를 하고, 엉덩이뼈를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사고가 나도 살펴보는 곳 하나 없고, 이용자와 갈등이 생겨도 알아서 해결하는 거지 기관은 연계해주고 나면 월급날 월급 주는 것 말고는 해주는 게 없다"고 미숙씨는 토로했다.
여성노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7.3%가 업무범위와 근무시간을 넘긴 무리한 요구를 받는 등 '이용자에 의한 부당대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참고 지낸다는 경우가 절반이었다. 직장(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7.5%뿐이었다. 업무 중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명 중 2명꼴이었는데,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경우(4.1%)는 직접 치료비를 부담한 경우(14.7%)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장애계에서는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제도는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서비스 품질은 제각각이고 전문성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활동지원사들도 현 '40시간 이론교육·10시간 현장실습'만 받고서는 현장 투입 시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모든 장애 유형을 포괄해 교육이 진행되는 데다가, 참고할 만한 체계적인 '케어(돌봄) 플랜'도 없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사끼리 알아서 주변 지인이나 노조를 통해 알음알음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고작이다.
전국여성노조 토론회에 참여한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활동지원 업무를 '쉬운 진입 시장'이라고 진단하면서 “더 많은 보수(보완)교육과 직무훈련이 필요함에도, 정책 당국이나 일자리에 뛰어든 당사자 모두 활동지원 직무를 편하게 인식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만큼 교육 체계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기관은 연 2회 의무 보수교육을 실시하게 돼 있지만, 교육 내용은 기관별 자율이라 실제 업무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윤리교육만 실시하기도 한다. 보수교육에 따른 '교육수당'도 없는 기관이 대다수라, 활동지원사 입장에서도 임금 일부를 포기해 가며 자발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유인이 적어 불참하는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