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상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함께 대안 찾자"는 공감의 말이 필요

입력
2022.11.26 14:00
피해자·유족·목격자 혼자 오래 두지 말고
조언 아닌 공감을…상투적 표현 피해야
"그럴 수 있어, 우리의 잘못" 'I 메시지' 사용을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20대 여성 A씨는 "잘 들어왔니"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158명의 청춘이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희생된 그날 밤, 이태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A씨는 야간 근무였다. 사고가 발생한 뒤 많은 인파에 옴짝달싹 못 하다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온몸이 굳어 첫 차가 오기 전까지 일하는 가게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겨우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연 순간 부모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그렇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힘겹게 붙잡았던 A씨의 마음에는 비수처럼 꽂혔다.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감정이 폭발해 "어떻게 잘 왔겠어! 전화 한 통도 안 하고"라며 오열했다.

부모님들은 그제야 뉴스를 보고 이태원에서 벌어진 사고를 알게 됐다. 이후 심리치료 과정에서 "내가 아이를 더 고통스럽게 한 건 아닌지, 너무 미안해 꼭 끌어안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토로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한 달 가까이 됐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목격자, 간접적으로 사고를 접한 뒤 이들의 아픔은 여전하다. 잊히기는커녕 더욱 고통을 호소한다.

이들의 심리치료를 맡고 있는 전문가들은 사회적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모두가 조심하며 오랫동안 서로를 보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사회의 시선도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문가 3인의 인터뷰는 대한적십자사 및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연계해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정신간호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죄책감에 숨기는 사람 많다는 점 인지해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이 고립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주변에 피해자나 유족이 있다면 혼자 남겨졌다는 마음이 들지 않게 살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면 자칫 과음이나 약물 과다복용 같은 부정적 방식으로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참사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평소처럼 "밥 먹을까?" 물으며 '함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좋다.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그 순간 아무도 살리지 못했다' '희생자가 있어 내가 산 건가' 같은 죄책감이다. 이때 이들에게는 "결코 너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사고였다" 등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말을 건네야 한다.

무심코 내뱉을 수 있는 핼러윈 축제 참여에 대한 낙인·혐오 표현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자신이 사고 현장에 있었다는 걸 주변에 숨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었던 B씨는 친구들 모임에서 "그날 이태원에 간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다른 사람의 얘기인 양 물었다. 정말 잘못한 건지 반응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를 비난한 사람들의 얘길 듣고 우울증세를 앓게 됐다.

당사자가 참사 공감 원할 때 얘기 꺼내야

이런 경우에는 네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아이(I·나) 메시지'로 답해 줘야 한다. "청년들이 놀 문화를 만들지 못한 우리 사회의 문제다" "간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등 당사자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줘야 한다.

"곧 좋아진다"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네 심정을 알 것 같다" 등 상투적인 위로의 말은 피해야 한다. 대신 "네 마음이 나아질 방법에 대해 같이 찾아보자"고 대안을 제시하면 당사자들은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위로하고 싶다며 먼저 이태원 참사 얘기를 꺼내는 건 좋지 않다. 오히려 감정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마음의 준비가 돼 얘기하고 싶어 할 경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이때 "지금은 슬퍼하는 게 당연한 시기"라며 감정에 공감해 주는 것도 좋다. 다만 섣부른 조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

*도움 주신 분: 박애란 정신간호사회 회장, 윤미경 경기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 오세진 서울시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활동가(대한적십자)

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