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강원 인제군 설악산국립공원에 사는 고양이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들고양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사는 장소, 즉 주택가에 살면 '길고양이', 공원이나 산에 살면 '들고양이'로 나뉘어서입니다. 단순히 호칭으로만 구분되는 게 아니라, 관리 주체나 적용 법률이 다르죠.
길고양이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관리를 맡고,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지만 들고양이는 환경부 소관으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이 적용되지요. 길고양이 학대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법상으로는 보호 대상입니다. 반면 들고양이는 설치류나 조류를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유해동물 취급을 받으며 '들고양이 포획·관리지침'에 따라 처리됩니다. 지침에 따르면, 야생동물이나 그 알·새끼·집에 피해를 주는 들고양이 포획을 허용하는데, 생포 후 처리방안은 '안락사', '불임수술과 재방사', '학술연구용 제공'입니다.
최근 설악산국립공원 내 고양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한 시민이 '국립공원 내 들고양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 또한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보고 고양이를 살처분한다고 오인해 온라인으로 민원제기를 독려한 겁니다. 지난달 말부터 국립공원공단과 상급 기관인 환경부, 국민신문고를 통한 민원제기가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국립공원 내 들고양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고양이 복지도 중요하지만 새 등 작은 동물 개체수를 감소시키는 등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2019년에는 환경부가 '생태계 해치는 악동 들고양이 관리 강화한다'는 제목으로 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서식밀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관∙자궁절제술(TVHR)을 하고, 새가 미리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들고양이에게 목도리를 씌우는 방법을 계획했는데요. 결국 해당 수술을 할 병원 부족과 목도리를 착용시키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립공원 내 고양이 수는 늘고 있을까요.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2015년 포획 개체수는 442마리에서 2019년부터는 200마리대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268마리였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그동안의 중성화 수술이나 포획 후 다른 곳에 풀어주는 이주방사로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임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8년부터는 윤리적 차원에서 살처분하지 않고 포획한 고양이는 모두 '중성화 후 재방사'(TNR)하고 있지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열린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들고양이 포획 및 관리지침 가운데 안락사 규정은 삭제하고, 길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중성화된 개체에 대한 방사 원칙 등의 내용을 보강해야 한다"며 지침 개정을 요구했습니다.
환경부는 지침 첫 항목에 둔 안락사의 순서를 뒤로 변경하는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안락사를 완전히 배제하는 방안은 신중히 검토한다는 입장인데요. 조만간 지침 개정안을 만들 예정입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는 중성화 수술 후 제자리 혹은 이주방사가 개체수 조절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문화된 '안락사' 규정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채일택 동자연 정책팀장은 또 "고양이가 국립공원 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게 먼저"라고 얘기합니다. 실제 2019년 환경부가 관련 정책을 시행하면서 근거로 든 '도시와 시골에 서식하는 한국 배회고양이의 먹이자원과 서식밀도 비교' 연구는 2013년에 발표된 한 대학 석사논문으로 연구 대상 역시 아파트와 주택가, 일반 농촌을 각 3곳씩 조사한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미 사문화된 안락사 규정을 삭제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실제 동물학대∙동물사체 사진을 공유한 오픈채팅방 참여자들은 "길고양이가 아닌 들고양이를 합법적으로 포획해 죽였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규정이 살아 있다면 언제든 고양이 학대 근거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또 앞서 고양이를 안락사시키려면 그 이유와 근거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