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찾아간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 길이 400m의 공장 양쪽 끝까지 연결된 긴 레일 위로 1,000도 이상의 시뻘건 쇳덩이가 굉음을 내며 대형 롤 사이를 빠르게 통과했다. 1열연공장은 불과 79일 전만 해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폭우로 인근 하천 냉천이 넘쳐흐르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지만 물기 하나 없이 말끔히 복구됐다.
손승락 포항제철소 열연부장은 "하루 1,000명 넘는 그룹사와 협력사 직원들이 수만 개의 부품을 분해해 닦고 말려 조립해 완성했다"며 "1열연공장이 재가동에 들어간 지난달 7일 숨죽여 지켜보던 직원들은 박수 치며 기뻐했다"고 말했다.
9월 6일 새벽, 4시간 동안 500㎜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49년 만에 모든 공장을 멈춰 세운 포항제철소가 빠른 속도로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창사 이래 처음 쇳물 생산까지 중단했지만, 정상화에 1년도 더 걸릴 것이라는 업계의 걱정과 달리 79일 만에 17개 공장 중 3전기강판, 2전기강판, 1냉연, 1열연, 1선재, 3후판, 2후판공장 등 7곳이 재가동 중이다.
천시열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부소장은 "올해 안에 8개 공장을 추가로 재가동할 계획"이라며 "나머지 두 곳도 일부라도 돌아갈 수 있게 계열사는 물론 협력사 인력까지 총동원해 매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침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24시간 복구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전후방 연관 산업 분야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포스코가 9월 21일 국내 철강 수급 안정화 발표 당시, 고객사와 유통점에서 보유한 제품 재고는 2~4개월 수준이었다. 연내 공장 15곳을 재가동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재고가 다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달 말부터 수급 불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내·외 경기 침체로 철강 제품 수요량이 많지 않아 시간표대로 공장이 돌아가면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4일 산업통상자원부 민관 합동 철강수급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포스코는 매출이 2조400억 원 줄고, 포스코에 납품하는 기업들은 약 2,500억 원의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남은 공장은 재가동한 공장보다 피해가 훨씬 크다는 데 있다. 복구를 끝낸 곳들은 포항제철소 중앙에 있어 태풍 때 범람한 하천 냉천과 떨어져 일부만 물에 잠겼다. 반면 냉천 바로 옆에 있는 10곳은 하천이 범람해 밀려 들어올 당시 1~3m가량 흙탕물로 뒤덮였다. 더구나 수전변전소가 침수돼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배수 펌프가 멈춰 물을 빼는 데 한 달이 걸렸고, 진흙을 퍼내는 데 또다시 한 달이 걸렸다.
이날 1열연공장에 이어 둘러본 2열연공장은 입구부터 하수구 냄새와 비슷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태풍 때 불이 났던 지하실은 아직도 천장과 바닥에 물기가 가득했고, 곳곳에 진흙이 남아 있었다.
2열연공장은 1열연공장보다 규모로는 1.5배, 생산량은 1.7배 수준인 데다 국내서 유일하게 포항제철소만 만드는 최고급강판을 찍어 낸다. 제철소 중 핵심으로 꼽히는 2열연공장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이곳에서 나오는 열연강판으로 특수 소재를 생산하는 전기강판과 스테인리스 생산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포스코는 2열연에서 생산하던 고탄소강을 광양제철소에서도 생산 가능한 설비 체제를 마련했고, 전기차 구동모터에 사용되는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Hyper NO)용 열연소재도 광양제철소로 전환하는 한편, 복구가 끝난 1열연공장에서도 대체 생산을 추진한다. 여기에 중국 장가항에 있는 포스코장가항불수강유한공사(PZSS)와 태국 포스코-타이녹스(POSCO-Thainox) 등 해외 생산법인을 활용해 정밀재용 특수강 스테인리스 제품을 국내 고객사에 공급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
박남식 포스코 판매생산조정실장은 "일부 제품의 부족 사태를 미리 막기 위해 전 고객사와 1대 1 상담으로 재고 및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며 "직접 거래하지 않는 영세기업도 피해가 가지 않게 고충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등 철강 산업 생태계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