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유성룡이 직접 일상을 기록한 달력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이하 경자)’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통력은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책력으로 유성룡이 직접 사용한 대통력 8권이 종가에 남아 있다. 이번에 환수한 경자는 경자년(1600년)을 다룬 대통력이다. 표지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하는 순간을 돌아본 기록이 담겨 있고 등장하는 인물만 190여 명에 달한다. 유성룡의 생애와 시대상을 상세히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또 하나 열린 것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경자를 공개했다. 경자는 일본에서 개인 소장자가 2020년 현지 고서적 경매에서 사들인 것을 재단이 올해 9월에 매입했다. 애초에 경자가 해외로 유출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경자는 16장으로 구성된 책으로 1599년 금속활자로 인쇄됐다. 앞부분은 24절기가, 뒷부분에는 1월부터 12월까지 일별로 짧은 글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요즘으로 치면 다이어리에 해당한다.
유성룡은 뒷부분에 검은 글씨와 붉은 글씨로 그날의 날씨, 일정, 약속, 병세와 처방 등을 기록했다. 정제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상근전문위원은 “필적이 징비록과 동일하고 등장 인물이나 내용을 볼 때 경자는 유성룡의 대통력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경자에는 유성룡의 일상이 상세하고 치밀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여백에는 술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다. 제사와 손님 대접에서 술을 중요하게 여겼던 유교적 전통이 드러나는 기록으로 보인다. 정 위원은 “감주와 밀주 등 7, 8종의 술이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쌀을 씻는 것부터 시작해서 물을 얼마나 넣는지 등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 유교 지식을 전달한 것으로 유명한 강항이 귀국했다는 내용(6월 5일), 의인왕후의 승하 소식(7월 4일일) 등이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다.
이순신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록은 경자의 표지에 담겨 있다. 이순신이 전사한 시기는 1598년 11월 19일이어서 2년 뒤인 경자년 달력 표지에 이를 기록해 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짐작해볼 단서는 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편 경자년 1월 29일 기록에 선조가 "이순신의 사당을 세우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의논한 바가 있는데 아직까지 하지 않았는가?"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유성룡과 이순신이 유년기를 같은 동네에서 보냈고 관직에 나아가서는 유성룡이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점을 고려하면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유성룡의 비통한 심경을 헤아려볼 수 있다. 정 위원은 원래 표지가 찢겨나가자 유성룡 자신이 이전에 사용한 종이를 임시 표지로 만들어 붙인 것으로 추정했다. 정 위원은 “표지에는 '경자'라는 간지가 올려져 있는데, 후손이 선현의 필적에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력은 명의 역법으로 1370년부터 조선이 청의 시현력을 수용한 1653년 무렵까지 사용됐다. 조선의 조정은 동지에 책력을 제작해서 문무, 관료들에게 보급했는데 유성룡 역시 이를 받았다. 정 위원은 “대통력 자체는 여러 문중에 내려오지만 경자는 유성룡 선생이 직접 쓴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